“정부 대출이 홈쇼핑 타임세일이냐.” “긴급대출이 아니라 게릴라대출이다.”
지난 9일 중소벤처기업부가 내놓은 저금리 2000만원 긴급대출 상품을 신청하려고 오후 내내 ‘먹통’이 된 사이트를 클릭하다 시간을 버렸거나 뒤늦게 알게된 소상공인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전국 소상공인은 640만명에 이르지만 예산은 3000억원 규모라 대출받을 수 있는 사람은 1만5000명. 이날 오전 9시에 긴급대출 계획을 발표한 뒤 낮 1시부터 신청을 받았다. 사업자 번호만 있으면 대출 가능한 사실상 ‘선착순 대출’이었다. 수십만명이 몰리면서 서버는 금세 마비됐다. 오후 내내 제대로 영업도 못 하고 컴퓨터와 씨름하는 소상공인이 속출했다. ‘예정된’ 혼란이었다.
중기부는 ‘먹통 행정’이라는 비판에 억울해한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인데, 올해 남은 예산과 내년에 이월될 예산을 모아 당장 어려운 소상공인을 위해 3000억원을 썼다는 항변이다. 평소 박영선 중기부 장관의 ‘적극행정’ 기조에 맞게 일했으나, 일부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디테일이 ‘엉망’이었다는 데 있다. 한정된 예산으로 적은 인원에게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면 최소한의 기준을 담거나, 적어도 하루 전에는 예고라도 했어야 했다. 무엇보다 서버 용량이라도 넉넉히 확충했다면 코로나19에 시름하는 소상공인의 ‘희망 고문’은 줄일 수 있었다. 인터넷 이용이 어려운 소상공인들은 대출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9일 오후 긴급대출 실무를 맡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에는 “스마트폰도 없는데 장난하느냐”라는 항의성 민원 전화가 몰아쳤다.
지난 3월, 코로나19 대규모 확산세를 보이던 대구에선 벚꽃 나무 아래 1000명 넘는 소상공인이 대출을 받으려 소진공 센터 앞에 줄을 서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때 뭇매를 맞은 중기부는 4월 들어선 대출에 홀짝제를 도입했지만 이마저도 새벽에 줄을 서야 현장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중기부가 코로나 직접대출을 시작한 지도 10개월째인데 여전히 행정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 어려운 시대에 과연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인도해 주십사 기도하고 있다”(박영선 장관의 서울시장 출마 의사에 대한 12월1일 <시비에스> 라디오 인터뷰)거나 ‘2021년에도 박영선 장관과 함께 일하고 싶다고 응답한 중기부 4급 이하 무보직 공무원이 71%’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9일 보도자료로 낸 중기부 노동조합을 보면, 장관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그 ‘적극행정’의 진정성마저 의심하게 한다.
“이런 예측을 못 했다면 자격이 없는 것이고, 알았다면 직무유기다. 컴퓨터 앞에서 뺏긴 시간 모두 보상해라.” 긴급대출 신청에 실패한 한 소상공인의 말을 중기부는 이제라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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