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를 빼고는 주식시장을 얘기하기 힘들다. 숫자가 이를 증명해 준다.
작년 5월 이후 전체 시가총액이 110.8조원 늘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도 102.2조원과 19.8조원이 늘었다. 전체 시가총액보다 반도체 두 종목의 증가액이 더 큰데, 반도체가 없었으면 종합주가지수가 2000을 넘지 못했을 거란 의미가 된다. 여기에 시가총액이 제일 큰 종목이 움직이면서 다른 대형주가 올라갈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 것까지 감안하면 반도체의 영향력이 더 커진다.
작년 5월부터 반도체 경기 회복이 시작됐다. 빅데이터와 스마트폰 사양 고급화로 디램과 낸드 플래시의 수요가 증가한 게 원인이었다. 그 영향으로 반도체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는데 1.5달러이던 4기가 디램이 8개월 만에 배 이상이 됐다. 이런 가격 흐름이 납품가격을 움직여 작년 4분기에 반도체 2개사의 영업이익이 10조7000억원까지 늘어났다. 이익을 토대로 주가가 상승하기 시작하자 악재도 힘을 쓰지 못했다. 중국 칭화그룹의 반도체 투자 계획이나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생산 중단 같이 평소 같으면 주가를 뒤흔들 재료도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희석되고 말았다.
당분간 반도체 회사 주가가 상승할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이 전망을 부인하기 어렵다.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하나 있다. 전통적으로 반도체는 경기 변동이 심하고, 한 번 방향이 바뀌면 예상을 뛰어넘는 확장이나 위축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수급이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인데, 작년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작년 5월 이전까지 반도체 전망은 암울했다. 수요 둔화에 중국의 투자 증가로 공급 우위가 나타날 거란 전망이 우세했다. 그 전망이 5월부터 변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누구도 반도체 업황 둔화를 의심하지 않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았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윈도를 내놓은 걸 계기로 시작된 반도체 가격 상승은 1995년에 4메가 디램 가격이 48달러까지 상승하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그 해 삼성전자가 우리 기업으로는 처음 조 단위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문제는 1996년이었는데 반도체가격이 고점 대비 90% 가까이 떨어지면서 적자로 반전되고 말았다. 반도체는 업황 변화가 크기 때문에 가장 좋을 때 주식을 내다 팔아야 한다는 말이 만들어졌다.
지난 20년간 수 차례 사이클을 겪으면서 반도체 경기 진폭이 많이 줄었다. 수요와 공급을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이 과거에 비해 개선됐다는 얘기다. 이를 감안할 때 이번 반도체 경기도 계속 올라가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선 올 1분기 성적이 좋지 않을 걸로 전망되고 있는데, 중국이 스마트폰 재고 조정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어서다. 주가는 업황보다 빨리 움직인다는 점도 감안했으면 한다.
이종우 아이비케이(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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