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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직장·취업

“깜깜이 월급 일방적 통지…30년 쌓인 불만 터졌다”

등록 2021-05-04 20:33수정 2021-05-05 02:31

[인터뷰] 현대차그룹·LG전자 ‘MZ세대’ 사무직 노조위원장
“부모님도 뉴스 보고 제가 노조위원장이 된 걸 알지만 모르는 척해주시는 것 같아요.”

이건우 위원장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현대자동차그룹 사무연구직 노동조합 위원장인 그는, 입사 2년차 27살 청년이다. 이보다 한달 먼저 출범한 엘지(LG)전자 사무직 노동조합의 유준환 위원장도 입사 4년차의 갓 서른이 된 엠제트(MZ·1980~2000년대 출생) 세대다.

―노조 하면 회사에서 찍힌다고들 하잖아요.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걱정하지 않나요?

유준환(이하 유) “아버지는 이제 저를 이해해주시는 편이지만, 어머니는 요즘도 ‘4년차인 네가 왜 위원장을 하느냐’며 걱정하세요.”

이건우(이하 이) “회사 동료들이 티브이에서 봤다며 응원한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제가 다니는 회사의 생산직 노조 간부께서도 사무직 권익도 중요하다고 격려해주셨어요.”

이건우 현대자동차그룹 인재존중 사무연구직 노동조합 위원장이 3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건우 현대자동차그룹 인재존중 사무연구직 노동조합 위원장이 3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무직 노조를 만들게 된 계기가 성과급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무직들이 들어와 있는 오픈 카톡방과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로 통계를 내봤어요. 그랬더니 제도 개선이 요구 사항 1위였어요. 회사가 힘드니 참고 기다려달라면서도 임원 연봉은 오르고 정작 직원은 제대로 대우를 못 받는 상황이 계속됐어요. 그렇게 쌓인 불만이 사쪽과 소통 부재로 해소되지 않은 게 주요 원인이라고 봐요.”

“성과급은 정말 한 단면일 뿐이에요. 회사가 사무직에 연장 근무와 무료 봉사를 요구하거나 수당을 조금만 주려고 축소 보고를 하고 심지어 상사의 폭언, 폭행 등 그동안 꺼내놓고 얘기하기 힘든 것들이 계속 쌓여왔거든요. 예를 들어 사무직 노조가 생긴 직후 회사가 공지한 임단협(임금 및 단체 협약) 결과에 ‘제이비(JB·주니어보드)와 협의했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었어요. 제이비는 사무직 노동자를 대표해서 사쪽과의 협상에 참여하는 이들인데, 문제는 제이비로 지명된 선임연구원들조차 협의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에요. 워낙 비밀스러운 조직이라 지금도 제이비 대표 9명이라는 사람들의 정체를 몰라요.”

엘지전자 사무직은 자신들을 대변할 자체 노조가 없지만, 현대차는 사정이 다르다. 현대차 등 그룹 주요 계열사의 사원, 대리급(매니저) 직원은 입사와 동시에 생산직과 같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으로 자동 가입된다. 엘지전자 사무직도 생산직이나 서비스직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

유준환 엘지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동조합 위원장이 3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lt;한겨레&gt;와 인터뷰하고 있다.
유준환 엘지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동조합 위원장이 3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지금도 회사에 생산직 노조가 있는데 별도 노조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까?

현대차 직원 7만여명 중 사무직 비중이 30% 정도예요. 사무직 주장을 100% 반영하기 어려운 상황이죠.”

“기존 생산직 노조 설립이 58년 됐는데 이 중 32년이 무분규였어요. 물론 사무직이 생산직 노조에 가입할 수 있지만 지금껏 아무도 가입하지 않았다는 건 기존 노조를 향한 불신이 쌓였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차그룹 노조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현대차 울산공장에 있는 사무직은 생산직으로 분류돼 직급과 관계없이 노조 활동에 참여한다. 노조 가입이 막힌 서울 양재동 본사 중심의 젊은 사무직들이 별도 노조 설립을 원하는 것 같다”고 했다. 현대차 사무직은 과장급(책임) 이상이 되면 노조에서 자동 탈퇴가 된다.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대변할 기관이 없는 셈이다.

현대차그룹 사무직 노조는 공정한 인사 평가와 보상 시스템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이는 나이 많고 오래 일한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과 권한을 주는 기존 호봉제 중심의 연공서열 시스템을 바꾸자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연봉제를 적용받던 한국지엠(GM) 사무직이 민주노총 노조 가입 후 호봉제로 전환한 것과 정반대의 길을 걷는 셈이다.

―성과 평가를 강화하자는 말은 연봉제를 도입하자는 것으로 들립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쪽은 앞으로 성과에 맞게 성과금을 나눠주겠다면서도 임금의 전체 파이를 늘리지 않고 기존 파이를 쪼개서 분배하겠다고 해요. 그러면 많이 받는 사람과 덜 받는 사람 간 임금 격차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죠. 저희가 주장하는 건 무엇보다도 더 주고 덜 주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엘지전자 사무직은 지금도 연봉제를 적용하지만, 고과에 따라 임금이 제각각이고 성과급 지급 기준도 받기 직전까지 공개가 안 되고 있어요. 이런 부분을 우선해서 개선하려 해요.”

현대차와 엘지전자 사무직 노조를 향한 주위 시선에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그동안 생산직과 비교해 소외된 사무직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길 바라며 노조를 응원하는 내부자들이 많다. 한편으론 기존 노조 시스템을 금 가게 하는 분열의 시작이라거나 대기업 직원들의 배부른 얘기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저희를 외부에선 엠제트세대나 어린애들 등 특정한 틀에 끼워서 본다는 걸 잘 알아요. 하지만 저희가 주목한 본질적인 문제는 수십년 가까이 아무 얘기 못 하고 소통 창구도 갖지 못한 사무직의 권익이에요. 그런 불만이 쌓이고 쌓이다가 터진 게 성과급 문제였죠. 기업 노조의 사각지대였던 사무직의 권익을 보호하자는 게 노조를 만든 진짜 이유예요.”

현대차와 엘지전자 사무직 노조는 갈 길이 멀다. 노조원을 확보하고 사쪽과의 별도 교섭 창구도 마련해야 한다. 노조가 중간에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있다. 공교롭게도 현대차와 엘지전자 모두 전기차 사업을 신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기술이 중요한 전기차 시대가 오면 생산직보다 사무직이 기업의 다수이자 주류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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