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이 지난달 4일 ‘판도라 페이퍼스’ 폭로에 대한 입장을 기자회견으로 밝히고 있다. AFP 연합뉴스
칠레 하원이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가결했다.
<에이피>(AP) 통신은 칠레 하원이 9일 ‘판도라 페이퍼스’와 관련한 대통령 탄핵안을 155명 의원들 중 78명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고 보도했다. 단 한 표 차이로 과반이 돼 탄핵안이 가결된 것이다.
피녜라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시도는 지난달 3일 각국 정치인들과 부호들의 조세회피처 이용 등 비밀 재산 정보를 담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의 ‘판도라 페이퍼스’ 폭로로 촉발됐다. 부자 정치인인 피녜라의 아들이 대표적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만든 회사를 가족이 운영하는 광산 업체 매각에 이용한 게 이 문서로 드러났다. 광산 매각이 최종 단계에 있던 2011년에 칠레 정부가 이 광산이 있는 지역을 자연보호지역으로 선포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도 의혹을 키웠다. 당시 피녜라는 첫번째 대통령 임기(2010~2014년)에 있었다.
피녜라 대통령은 앞으로 상원의 탄핵심판에서 대통령직을 유지할지 박탈당할지가 결정된다. 하지만 실제로 탄핵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은 크지 않다. 43석인 상원이 탄핵을 최종 결정하려면 3분의 2인 29석 이상이 필요하나 야당 의석은 24석뿐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하원에서는 탄핵당했으나 상원의 탄핵심판에서 살아남은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칠레 검찰은 피녜라 대통령 쪽의 광산 매각에 대해 조사했으나 범죄 혐의를 찾지 못했다고 2017년 밝힌 바 있다.
상원 탄핵심판은 선거 일정을 고려할 때 실효성이 떨어지는 면도 있다. 내년 3월에 임기가 끝나는 피녜라 대통령은 연임 금지에 따라 대선에 나서지 못한다. 앞서 야당은 2019년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요구하는 시위자들을 유혈 진압했다는 이유로 피녜라 대통령 탄핵을 시도했지만 당시에도 성과는 없었다.
피녜라 대통령은 광산 회사 경영에 간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하원의 탄핵안 통과에 대해 피녜라 대통령 쪽은 “정치적 쇼이고 미디어 쇼”라고 반응했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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