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허큘리스의 한 주유소에 갤런당 5달러가 넘는 휘발유값이 표시돼 있다. 허큘리스/AFP 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주요 석유 소비국들에게 전략 비축유 방출을 요청해 한국 정부도 이를 검토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관계자는 18일 미국 정부가 최근 외교부를 통해 전략 비축유 방출을 요청했으며,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 부처들이 수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국내 상황과 함께 미국으로부터 요청을 받은 다른 국가들 동향을 봐가며 결론을 내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날 <로이터> 통신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일본, 인도, 한국 등 주요 석유 소비국들과 비축유 방출 문제를 논의해왔다고 보도했다. 한 소식통은 일본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다른 국가들 반응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16일 화상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양국이 함께 전략 비축유를 방출하는 문제를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백악관은 “세계 에너지 공급과 가격이 경제 회복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도록 에너지 소비국들과 대화하고 있다”고 밝혀왔다. 비축유 방출 논의에 참여한 미국 관계자는 석유시장에 영향을 미치려면 미국 쪽에서만 2천만~3천만배럴을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 등은 1970년대에 아랍 국가들이 석유 수출을 제한하자 비상 상황에 대비해 ‘전략 비축유’ 제도를 도입했다. 한국석유공사와 일본자원에너지청에 따르면 한국의 비축량은 9700만배럴, 일본은 4억9천만배럴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례적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휘발유값 상승 등으로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6.2%)이 3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식품과 에너지 가격이 크게 오르며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인 41%까지 곤두박질쳤다. 자동차 사용이 많은 미국인들은 휘발유값에 민감한데, 갤런(약 3.79리터)당 평균 가격이 3.41달러(약 4028원)로 1년 전보다 60% 이상 치솟았다. 국제시장 원유값은 지난달 초 7년 만에 최고를 찍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산유국들은 미국 등의 증산 요구에 하루 40만배럴을 증산하기로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추가 증산을 거듭 요구했지만, 오펙은 12월이면 공급 과잉이 발생한다고 주장하며 버티고 있다. <로이터>는 비축유 방출 논의가 “주요 석유 소비국들과 함께 오펙에 ‘행동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상징적 의미”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형 석유 업체들에도 화살을 돌렸다. 그는 이날 연방거래위원회에 “반소비자적 행위의 증거들이 쌓이고 있다”며 미국 석유 업체 엑손모빌과 셰브런의 불법행위가 휘발유값을 상승시키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하라고 요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막대한 이익을 올리는 두 업체가 수십억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과 배당금 지급을 계획하고 있다며 “요점은 석유와 가스 업체들의 비용은 줄어드는데도 휘발유값이 높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 유가가 급등한 것은 코로나19로 위축됐던 미국 등의 경기가 급속히 회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화석에너지 사용을 줄이자는 움직임에 석유 분야 투자가 위축됐다는 시각도 있다. 또 지난해 유가가 폭락했을 때 투자가 급감했고, 미국 금융기관들이 손실을 최소화하려고 석유 업체들에 채무 상환을 독촉하는 것도 증산의 걸림돌로 지목된다.
이본영 기자, 김영배 선임기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