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2일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 달이 돼가는 시점에서 백악관은 러시아의 전쟁 목적 달성이 “명백히 실패”했다며, 크렘린은 “정확히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며 매우 상반된 평가를 내놨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2일(현지시각) 브리핑에서 러시아가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키고 △자국의 힘과 위신을 강화하고 △서구를 분열·약화시킨다는 세 가지 기본 목표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까지 러시아는 세 가지 목표 달성에 명백히 실패했다”며 “사실은 그 반대 상황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러시아의 첫번째 목적 실패는 “용감한 우크라이나인들이 항복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번째 목적 실패는 “러시아의 힘과 위신이 매우 손실”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번째 목적 실패는 “자유세계 국가들이 더 단결하고 더욱 단호”해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시엔엔>(CNN) 인터뷰에서 전쟁이 “정확히 사전에 설정한 계획과 목적에 부합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목표를 달성했느냐는 질문에는 “아직은 달성하지 못했다”고 했다. 러시아가 주장하는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와 ‘중립화’ 등을 이루지 못했다는 뜻이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이날 “작전이 이틀 정도에 끝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다”는 말도 했다고 <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전쟁이 일반적 예측보다 장기화됐다는 지적을 의식한 발언이다. 푸틴 대통령이나 페스코프 대변인은 그동안에도 전쟁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러시아가 예측을 크게 뛰어넘는 수준으로 고전하고 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고, 여러 요인이 겹쳐 러시아의 전쟁 목적 달성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관측에 점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비해 압도적인 군사력과 적어도 수개월에 걸친 준비에도 불구하고 키이우 등 주요 도시 주변에서 강력한 저항을 만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우크라이나 침공에 동원된 러시아군의 전투력이 개전 초기를 기준으로 처음으로 90% 밑으로 떨어진 것으로 평가됐다고 밝혔다. 이는 러시아군의 병력과 장비 손실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최근 <시엔엔>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여러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병참 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다”며 “전술 정보를 잘 활용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지상 작전과 공중전 능력을 통합시키지도 못하고 있다”며 “러시아는 신속하게 움직여 매우 빠르게 수도(키이우)를 점령할 것으로 예상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페스코프 대변인은 이번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어떤 상황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냐는 질문에 “나라의 존립이 위협 받는다면” 쓸 것이라고 답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텔레비전 연설로 우크라이나 침공 개시를 선언하며 “누구든 우리의 길을 막고 나아가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들에게 위협을 가하려 하면 즉각 대응할 것이며, 그 결과는 당신들 역사 전체를 통틀어 보지 못한 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경고는 사흘 뒤 그가 경제 제재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적대적 언사를 이유로 핵무기 운용 부대에 경계 태세를 지시한 것과 맞물려 핵무기 사용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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