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하려고 23일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공항에서 알렉산더르 더크로 벨기에 총리의 영접을 받고 있다. 브뤼셀/AFP 연합뉴스
백악관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전세가 불리해지면 생화학무기나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에 대비하려고 비상대책팀을 소집해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23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안보 분야 관리들로 구성되고 ‘타이거 팀’으로도 불리는 비상대책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나흘 뒤인 2월28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도해 꾸려졌다고 전했다. 이 팀 구성원들은 일주일에 3차례씩 만나 러시아가 생화학무기나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들이 어떻게 대응할지를 논의하고 있다.
백악관 비상대책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국한해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더라도 치명적인 화학물질이나 방사성물질이 주변 나토 회원국 상공에 퍼진다면 이를 나토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정해야 하는지도 검토하고 있다. 나토 헌장은 개별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집단 대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나토 땅을 1인치라도 침범하면 대응하겠다”고 러시아에 거듭 경고해왔다. 비상대책팀은 러시아가 군사원조 물자를 타격하려고 나토 회원국 영토를 공격하는 경우, 나토 회원국이 아닌 주변국 조지아나 몰도바를 침공하는 경우에 어떻게 할지도 검토하고 있다.
미국 관리들은 핵무기 운용 부대를 경계 태세로 전환한 러시아가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재래식 전력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면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없지만은 않다고 본다. 이런 전망은 전쟁이 한 달이 돼가는 가운데 러시아군 사상자가 크게 불고 러시아군이 키이우 부근에서 수세로 전환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1일 “푸틴은 궁지에 몰렸다”면서, 그래서 생화학무기를 쓸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22일 <시엔엔>(CNN)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국가의 존립이 위협 받는다면” 핵무기를 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존립 위협’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러시아가 전형적 핵무기보다 파괴력이 약소하지만 재래식 폭탄보다는 훨씬 강력한 소형 전술핵무기로 우크라이나를 제압하고 국제적 대응을 혼란스럽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한 미국 관리는 그렇게 된다면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공언은 취소돼야 한다고 말했다. 프랭클린 밀러 전 나토 핵정책위원장은 최근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핵무기를 쓴다면 미국은 우선 시베리아 미개척지나 러시아군 기지에 잠수함에서 미사일을 발사해 경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토 특별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이날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 안에서만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해도 나토 회원국 시민들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번 회의에서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생화학전이나 핵전쟁 보호 장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설리번 백악관 보좌관은 이번 정상회의는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럽의 위기감이 한껏 높아진 가운데 이렇게 민감한 사안들을 논의하는 이번 정상회의는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될 예정이다. 30개국 정상들이 모이는 회의장에는 정상들의 보좌진도 들어갈 수 없고 휴대폰 반입도 금지된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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