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23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전용기에 오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뒤 처음으로 미국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키이우를 방문해 추가 군사원조 계획을 발표했다. 전쟁이 키이우 공방전이었던 ‘1단계’에서 동부 돈바스 지역의 운명을 건 ‘2단계’로 접어들면서, 미국의 지원도 더 적극적이 되어가고 있다.
<에이피>(AP) 통신은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24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추가적인 군사적, 외교적 지원을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외교와 군사 사령탑이 동시에 키이우를 방문한 것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 의지를 과시하려는 행보로 해석된다.
미국은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3억2200만달러(약 4020억원)의 군사원조를 제공하고 탄약 1억6500만달러어치의 판매를 승인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로써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군사원조는 모두 37억달러에 이르게 됐다. 이번 군사원조는 돈을 주고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무기를 사게 한다는 점에서 기존 원조와 구별된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무기 등을 직접 무상 제공하는 형태였다.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 15개국에도 약 4억달러의 군사원조를 제공하기로 했다.
블링컨 장관은 폴란드로 철수시킨 미국 외교인력을 이번 주에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로 복귀시키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미국은 전쟁의 진행 상황을 평가한 뒤 키이우 주재 대사관 업무를 조속히 재개하는 것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또 조 바이든 대통령이 슬로바키아 주재 미국대사인 브리짓 브링크를 장기간 공석인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로 지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8억달러어치 군사원조를 발표한 지 사흘 만에 또다시 군사원조를 발표한 것은 우크라이나 전황을 그만큼 위중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최근 돈바스 지역 전투가 본격화되면서 앞으로 한달이 전쟁의 판세를 가를 고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오스틴 장관은 26일 나토 국방장관 회의에 참석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 방안을 논의한다.
한편 미국은 두 장관의 키이우 방문 과정을 비밀에 부치며 안전 문제에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날 이들이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렸지만, 미국 국무부 등은 이를 공식 확인하지 않았다. 두 장관과 동행한 기자들도 폴란드 국경 근처까지만 이동하고 우크라이나 진입은 허용되지 않았다. 기자들의 폴란드 내 위치를 보도하는 것도 금지됐다. 육로로 키이우에 진입한 두 장관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나눈 면담 내용은 이들이 복귀한 뒤에야 보도 제한이 풀렸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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