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러시아의 알파은행 총재 표트르 아벤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한테 훈장을 받고 있다. 알파은행과 아벤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미국 등 서구의 제재 대상에 올랐다. AP 연합뉴스
미국 하원이 27일(현지시각) 동결된 러시아 신흥재벌(올리가르히)의 자산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도록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촉구하는 법안을 찬성 417 대 반대 8표로 통과시켰다.
법안을 주도한 민주당의 톰 맬리나우스키 의원은 “우크라이나인들은 폐허에서 주검들을 묻고 있는데 요트, 은행 계좌, 빌라, 비행기 등 이 모든 러시아인의 부를 푸틴과 그 친구들에게 돌려줄 수 있겠냐”며 “그렇게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올리가르히들의 자산을 노린 이 법안은 대통령의 조처를 촉구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미국이 동결한 러시아인들 자산을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사용하자는 내용이어서 상징성이 크다.
미국 행정부가 이를 실행할 가능성도 있다.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은 26일 상원 세출위원회에 출석해 이 법안에 관한 질의에 “우리는 일부 돈이 우크라이나에 직접 가도록 하는 법안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런 자산을 동결하는 목적은 그들에게 돌려주려는 게 아니라 더 나은 곳에 쓰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상원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러시아 쪽 자산을 매각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수 있는 권한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주는 법안을 행정부와 상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유럽 각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친분을 배경으로 부를 쌓았다며 올리가르히들을 제재 명단에 올리고 이들의 자산을 동결해왔다. 최근에는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스페인 당국이 협력해 러시아 에너지 재벌의 9천만 달러(약 1140억원)짜리 요트에 동결 조처를 취했다.
동결 자산을 처분해 제3국을 지원하는 것은 미국의 기존 제재 정책 범위를 크게 뛰어넘는다. 자산 동결은 상대의 행동 교정이 주목적이고, 제재 목적이 달성되거나 타협이 이뤄지면 원소유주에게 돌려주는 게 기본 개념이었다. 자산 동결과 몰수 및 매각은 다른 문제라 법적 논란도 일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전에도 이런 법안이 추진됐다가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법률가들 및 시민단체의 지적에 더 진전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번 법안도 이를 의식해, 대통령이 제재 대상 러시아인들의 자산을 몰수할 수 있는지 헌법적 검토를 선행해야 한다고 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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