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15일 마크 에스퍼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함께 백악관에서 코로나 백신 개발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주변에 시위대가 몰려들자 발포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마크 에스퍼 당시 국방장관이 폭로했다.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는 에스퍼 전 장관이 곧 출간할 회고록 <신성한 맹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6월 시위대가 백악관 주변으로 몰리자 “저들을 쏘면 안 되나? 그냥 다리나 그런 데를?”이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고 2일 전했다. 당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체포 과정에서 경찰관한테 목이 눌려 사망하자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구호를 내건 시위가 크게 번지고 있었다.
에스퍼 전 장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무실인 백악관 오벌룸에서 “얼굴을 붉힌 채로 워싱턴에서 진행되는 시위에 대해 큰소리로 불평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밝혔다. 에스퍼 전 장관은 당시 오벌룸 분위기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비현실적인 순간”이었다며 “나는 혼란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트럼프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해 5월29일 시위대가 백악관 주변으로 진출하자 지하 벙커로 몸을 피하기도 했다. 그는 “위대한 수도 워싱턴을 보호하기 위해 신속하고 단호한 조처를 하겠다”고 했고, 백악관 주변에 주방위군이 배치되기도 했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방정부들이 시위 진압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 군대를 투입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에스퍼 전 장관은 6월3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내 소요 진압에 현역 군인들을 투입할 수 있는 반란법 발동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2019년 7월부터 국방부를 이끈 에스퍼 전 장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임기를 불과 두 달여 남겨둔 2020년 11월에 해임됐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와 관련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게 결정적이었다는 해석이 나왔다. 또 여러 군사기지에서 남북전쟁 때의 남부연합군 지도자들 이름을 지우려고 한 것도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미운털이 박힌 이유로 꼽혔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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