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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페루 내전 ‘아코마르카 학살 사건’ 희생자, 37년 만에 영면

등록 2022-05-23 14:37수정 2022-05-23 15:01

1980~2000년 정부군과 좌익 반군 내전
7만명 숨진 사건에서 민간인 대량 학살
페루 ‘아코마르카 학살사건’ 희생자의 유족이 20일 1985년 정부군에 살해된 유족의 관 앞에서 애도하고 있다. 아코마르카/AFP 연합뉴스
페루 ‘아코마르카 학살사건’ 희생자의 유족이 20일 1985년 정부군에 살해된 유족의 관 앞에서 애도하고 있다. 아코마르카/AFP 연합뉴스

라틴아메리카 페루 현대사의 비극인 ‘아코마르카 학살사건’의 희생자가 37년 만에 뒤늦은 장례식을 치렀다.

지난 20일(현지시각) 페루 안데스 산맥이 지나는 아야쿠초주 아코마르카에선 1985년부터 2000년까지 정부군에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유가족들의 장례식이 엄수됐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장례식에는 희생자를 위해 모두 80개의 관이 마련됐는데, 이중 유해가 들어있는 관은 37개뿐이었다. 나머지 관엔 아직 찾지 못한 유해 대신 고인들의 옷가지나 유품들을 넣었다.

이들은 정부군이 머물며 지역민들을 고문하던 군 시설이 있던 자리에 묻혔다. 당시 어린 열살 소녀였던 후스타 추촌(48)은 “이제야 우리 이웃과 친구들이 안식을 얻었다”고 말했다.

1980년부터 2000년까지 페루에선 안데스 산골 지역을 중심으로 정부군과 좌익 반군 ‘빛나는 길’이 내전을 벌이면서 모두 7만명에 가까운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아코마르카의 잔혹한 학살극은 ‘빛나는 길’이 산골 마을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숨어다니자, 추격에 나선 정부군이 아코마르카에 쳐들어오면서 시작됐다. 아코마르카 주민들은 케추아 원주민들로 대부분 케추아 말만 썼다. 정부군은 이들 주민이 ‘빛나는 길’에 가담했다며 무차별적으로 살해했다.

추촌은 1985년 7월 정부군 병사들이 마을 장터에 난입해 그녀와 그녀의 사촌을 성폭행했다고 증언했다. 추촌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몰랐다. 나를 죽이지 말라고 애원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최악의 순간은 한 달쯤 뒤인 8월14일 찾아왔다. 병사들이 노인과 어린아이, 여성들이 포함된 69명을 한 데 모이게 했다. 군인들은 이들을 세 곳에 분산 수용한 뒤 총을 쏘고 집에 불을 질렀다. 어머니와 형제자매를 잃은 테오필리아 오초아(49)는 “사람들을 집 3채 안에 몰아넣고 총을 쏘고 불을 질렀다. 모두 비명을 질렀다. 끔찍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살아남은 유가족들이 페루의 의회에서 정부군의 잔혹상을 증언하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면서 논란이 되자, 그해 페루 당국은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당시 주민 학살을 주도한 켈모 우르타도 소위는 애초 살해 혐의로 기소되지도 않았다. 학살사건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만 문제 삼아 4년 형을 선고했으나 이마저도 형식적이었다. 그는 군에서 쫓겨나지도 않고 계속 복무했다.

우르타도는 1999년 전역한 뒤 미국 마이애미로 갔다. 그러나 유족들의 끈질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에, 그는 2011년 결국 민간인 학살 혐의로 체포됐고 페루 당국에 신병이 인도됐다. 그는 페루 법원에서 민간인 학살 혐의에 대해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나 법원은 우르타도 등 10명을 민간인 집단학살 혐의를 인정해 이들에게 23~25년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들 중 당시 장성으로 집단학살을 명령한 윌프레도 모리 등 5명은 도피해 아직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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