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30일 기자회견에서 새로 발의된 총기소유 제한 법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타와/로이터 연합뉴스
한국에서도 큰 파문을 일으킨 군내 성추행이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캐나다에서 남녀의 실체적 평등이 이뤄지도록 군 문화를 싹 뜯어고쳐야 한다는 개혁 보고서가 나왔다. 군내 성범죄는 민간 사법체계에서 수사·재판이 이뤄지게 하고, 여성·비백인의 승진을 늘리라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한국의 참모총장에 해당하는 조너선 밴스 국방참모장은 지난해 1월 전역 직후 부하 여군과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은 사실이 드러나 큰 곤욕을 치렀다. 부하 장교였던 켈리 브레넌 예비역 소령은 방송 인터뷰에서 밴스와 오랫동안 성관계를 맺어왔다고 폭로했고, 의회 청문회에선 그와 두 아이를 낳았다고 밝혔다. 밴스는 이후 브레넌에게 ‘조사관에게 거짓말을 해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나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후임 국방참모장으로 지명된 아트 맥도널드도 군사경찰이 ‘공개하지 않은 혐의’로 수사에 들어가자 곧바로 전역을 선택했다. 이 밖에도 캐나다군 내 주요 간부들이 성추행과 부적절한 관계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캐나다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캐나다 여군의 4분의 1이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잇따른 군내 성추문으로 군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자, 캐나다 정부는 재발 방지대책을 담은 독립적인 보고서 작성에 나섰다. 책임을 맡은 이는 유엔 인권최고대표를 역임한 루이스 아버 전 대법관이었다. 그동안에도 군내 성범죄에 대해선 세 차례 보고서가 나와 정부 차원의 개혁이 이뤄졌지만, 악습이 근절되지 않자 캐나다 정부가 다시 한번 팔을 걷어부친 것이다.
이런 경위를 거쳐 실태 조사에 나선 아버 전 대법관이 30일 400여쪽에 이르는 보고서를 공개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아버 전 대법관은 이번 보고서에서 ‘2015년 보고서에서 제기됐던 문제가 다시 확인됐다’고 밝혔다. 2015년 보고서는 캐나다군에 여성과 레즈비언·게이·트랜스젠더·바이섹슈얼 등 성소수자에 적대적인 기본적인 성문화가 만연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버 전 대법관은 이번 보고서에서 이전 개혁이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며 군이 “변화에 필요한 패러다임 전환을 완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어, “군은 여성 군인이 동료라는 현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 원하는 조건에 따라 군에 머물며 마땅한 실체적 평등을 요구하고 있다. 여군이 더는 손님처럼 느끼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48개 항에 달하는 권고를 담았다. 여기에는 군의 변화를 감시하고 정기적으로 외부에 보고하는 외부 모니터체계를 갖출 것, 성 관련 비위에 대해선 조사·소추·재판까지 전적으로 민간 사법체계에 맡길 것, 신입 장교에게 엘리트 군사학교가 아닌 일반 정규대학을 통해 대학 교육을 제공할 것 등이 포함됐다. 아버 전 대법관은 “군사학교는 낡고 문제점 투성이인 리더십 모델을 가진, 다른 시대에 물려받은 기관으로 보인다”며 “군사학교에 많은 투자를 했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이득은 분명하지 않다”고 적었다. 또 여성과 비백인 군인의 승진을 늘릴 것과 군인 모집업무를 민간에 넘겨 모집업무의 능력 수준을 높일 것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지난해 말 캐나다에서 두번째 여성 국방장관에 취임한 아니타 아난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버 전 대법관의 권고를 받아들인다며 “의미 있는 변화는 캐나다군을 감시하고 통솔하는 민간의 정치적 의지에 달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야 에이췰러 마운트세인트빈센트 대학 교수는 캐나다 군개혁의 핵심 열쇠로 “이상적인 군인 개념의 변화”를 꼽았다. 그는 “그동안 백인 이성애자 남성이라는 개념이 군에서 모든 것의 기반이었다”며 “여성 군인이나 레즈비언·게이·트랜스젠더 등이 군에 들어올 수 있었지만 모두 이런 군인 개념에 적응해야 했다”고 밝혔다. 이어, “더 이상 이런 개념은 작동할 수 없다”며 군을 둘러싼 제도와 관습이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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