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왼쪽)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15일 벨기에 브뤼셀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본부에서 ‘우크라이나 방어 연락 그룹’ 회의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브뤼셀/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군이 동부 돈바스에서 러시아군의 우세한 화력에 고전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등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국가들이 추가 군사원조에 나섰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소모전 양상으로 접어들었다며, 동맹국들과 함께 화력 지원을 이어갈 뜻을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에 10억달러(1조2798억원) 규모의 추가 군사원조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추가 군사원조는 화력 열세를 호소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전화 회담이 이뤄진 뒤 발표됐다. 이로써 미국의 군사원조 규모는 56억달러어치로 늘게 됐다.
미국은 곡사포 18문, 포탄 3만6천발, 대함미사일, 다연장로켓 등을 추가 제공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사거리가 긴 포병 전력이 약해 돈바스 지방에서 러시아군에 밀리고 있다며 다연장로켓, 탱크, 무인기 등을 대량 지원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구체적으로 다연장로켓시스템 300대, 전차 500대, 곡사포 1000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나토 회원국들을 중심으로 한 46개국도 이날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우크라이나 방어 연락 그룹’ 회의를 열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방안을 협의했다. 신범철 한국 국방차관도 화상으로 회의에 참여했다. 이어 열린 나토 국방장관 회의에서도 군사원조를 강화하기 위한 구체안이 논의됐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회의 뒤 독일은 장거리 다연장로켓 시스템 3기, 슬로바키아는 헬리콥터·포탄, 폴란드·네덜란드는 대포를 더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오스틴 장관은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군이 돈바스 지방에서 강한 공세를 펼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는 전장에서 결정적 시점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느슨해지면 안 되고, 열의를 잃으면 안 된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도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동부 전투가 1차대전과 거의 비슷한 “심각한 소모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장기화되는 전투에서 양쪽의 병력과 장비 손실이 크게 불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소모전 양상에선 병력과 장비가 더 풍부한 세계 2위 군사 대국인 러시아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애초 러시아가 까다로운 시가전을 펼쳐야 하는 키이우 공략을 포기하고, 개활지가 많은 돈바스 지방으로 전선을 옮길 때부터 이런 전망이 나온 바 있다. 러시아군은 돈바스 지방의 80%가량을 점령하고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미군 지휘부는 우크라이나군의 항전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효과적인 군사원조가 이뤄지면 러시아군을 충분히 대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오스틴 장관은 “우리가 필요한 물자와 무기를 제공하면 그들은 훌륭하게 사용해왔다”며 “우리는 가능한 한 그들을 최대한으로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밀리 의장도 ‘매일 100~200명씩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전사하는 상황에서 소모전 지속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지도력과 싸울 수단을 갖고 있는 한” 우크라이나군은 계속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소모전을 견디려면 병력과 화력이 끊임 없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화력은 나토가 계속 보충해주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는 나아가 러시아군이 동부 전선에서 우세를 점한다고 우크라이나에 협상을 종용하기보다 계속 전쟁을 수행하도록 돕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뉴욕 타임스> 기고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가 배제된 상태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켜왔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유럽의 주요국인 독일·프랑스·이탈리아 정상들이 16일 개전 이래 처음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기로 해 이 회담이 전쟁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방문의 명목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응원과 지원 강화다. 하지만 이들은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폴란드나 발트 3국 등 동유럽 쪽의 대체적 입장과 달리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을 추구하는 쪽이다. 전쟁이 경제에 끼치는 악영향과 나토가 직접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 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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