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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반전·징집거부’ 망명 러시아인들, 미국서 불법이민자 취급

등록 2022-11-29 14:14수정 2022-11-29 14:24

우크라 침공 반대 의사부부 미국망명 뒤
수갑·족쇄 차고 민간구금 시설서 가혹한 처우
러시아 징집병들이 27일 중남부 옴스크 기차역에서 주둔지로 출발하는 열차에 오르려고 승강장을 걷고 있다. 옴스크/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 징집병들이 27일 중남부 옴스크 기차역에서 주둔지로 출발하는 열차에 오르려고 승강장을 걷고 있다. 옴스크/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 의사인 보리스 솁추크와 그의 아내가 멕시코 국경을 거쳐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항에 도착한 것은 지난 4월이었다. 러시아 야당 지지자로 활동해온 부부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월 말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유혈 상황과 반전 메시지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솁추크의 아내는 “러시아인들이 진실을 보고, 러시아 언론의 거짓말을 믿지 않기를 촉구한다”고 호소했다. 부부가 올린 메시지는 자꾸 삭제됐고, 이후엔 계정이 정지됐다. 부부는 경찰이 자신들을 쫓는다는 얘길 듣게 된다. 부부는 미국 망명을 결심한다.

부부가 맞닥뜨린 현실은 기대와 크게 달랐다. 항구에 도착한 부부는 손에는 수갑, 발목엔 족쇄가 채워졌다. 루이지애나주에서 민간이 영리 목적으로 운영하는 서로 다른 이민자 구금시설로 보내져 생이별을 했다. 부부는 망명 신청자들을 위한 단체의 도움으로 석방 심사 대상이 됐지만 각각 1만5천달러(약 2천만원)의 보석금을 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솁추크의 아내는 가혹한 처우를 견디지 못하고 의식을 잃거나 다리가 마비될 정도의 고통을 참아야 했다. 이에 대해 미 이민세관국은 보석금을 1만달러로 깎아주겠다는 제안만 할 뿐이었다. 솁추크 역시 구금시설에 있는 동안 폭력을 쓰겠다는 다른 이의 협박에 방을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관리자는 수갑을 채운 채 그를 내동댕이쳤다. 솁추크는 머리를 다치고 코피를 흘리며 “러시아 같은 곳으로 가려고 러시아를 떠났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는 자유를 찾기 위해 단식농성을 하고 인권단체들과 유엔(UN)에 자신의 처지를 호소했다.

<뉴욕 타임스>는 28일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다 망명 신청을 한 이들을 포함해 전쟁을 피해 미국에 건너온 온 러시아인들 상당수가 구금돼 죄수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남부 국경을 통해 미국으로 들어온 러시아인이 과거에는 1년에 수백명에 불과했으나, 2022회계연도엔 무려 2만1763명으로 급증했다. 10월 한달에만 러시아인 3879명이 멕시코와 맞닿은 미국 남부 국경을 통해 들어왔다.

남편이 러시아에서 몇 차례나 투옥됐었다는 올가 니키티나도 루이지애나주 구금시설에서 5개월을 보냈다. 그 역시 구금 기간 동안 “내내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의 남편도 루이지애나주와 한참 떨어진 뉴욕주에서 4개월을 갇혀 지내면서 “너희는 불법 월경자들이니까 아무 권리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7개월간 구금됐으나 망명자 자격을 인정받지 못한 반전 활동가 이반 소콜롭스키는 “국경에서 총을 맞아 죽는 게 오랫동안 감옥에 갇히는 것보다 인도적일 것”이라고 했다.

<뉴욕 타임스>는 망명을 신청한 러시아인들 중 구금된 이들 숫자가 얼마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들을 돕는 변호사들은 다른 국적자들에 견줘 러시아인들의 구금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워싱턴/ 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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