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3일 회담장에 들어서고 있다. 외교부 제공
미국을 방문한 박진 외교부 장관이 3일(현지시각)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만나 북핵을 비롯한 안보 문제, 과학기술 협력, 국제 현안 공조 강화를 논의했다. 한국은 동맹과 확장억제 문제에 집중했고, 미국은 여기에 더해 중국 견제 등 자국 세계의 전략과 관련한 한국의 더 적극적인 협조를 요구했다.
박 장관은 이날 블링컨 장관과 40분간 회담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올해는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라며 “우리는 동맹의 외연을 정치, 군사, 경제 파트너십을 넘어 기술과 문화 영역까지 포괄하도록 확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장관은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비핵화 없는 평화는 가짜 평화”라며 “우리는 굳건한 연합 방위 태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확장억제의 실효성을 제고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유엔 제재를 빈틈없게 완전히 이행하는 한편 북한의 불법적 자금 흐름 차단 노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며 “북한의 불법 사이버 활동에 대한 대응은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미-일 안보 협력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한-미 외교 장관은 이날 ‘한-미 과학기술협력협정 개정 및 연장 의정서’에 서명하고 핵심 기술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박 장관은 “양국 간 연구·개발 협력은 물론 전문가 교류 및 지식 교환을 촉진함으로써 핵심 기술 파트너십을 증진할 것”이라며 “우리는 한-미 파트너십 확장의 다음 영역이 우주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 했다”고 설명했다. 또 미국의 ‘칩과 과학법’과 관련해 한-미 반도체 협력을 강화하고,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한국산 전기차 차별 문제를 놓고도 공조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을 놓고 “동맹과 친구를 지킨다는 우리의 약속과 확장억제에 대해서는 어떤 의심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한-미 과학기술협정’ 개정에 관해서는 “양국의 협력 범위가 생명공학, 퀀텀 기술, 인공지능(AI) 등 첨단 분야로까지 확장될 것”이라고 했다.
블링컨 장관은 “대만해협 평화 유지의 중요성과 한-미-일 안보 협력 확대도 논의했다”며 “태평양 도서국들의 경제 번영을 돕는 것을 비롯해, 다른 안보 도전에 있어서도 3국 공조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동반자 관계는 인도·태평양을 넘어선다. 우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도 하나로 뭉칠 것”이라고 했다.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 대만해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태평양 도서국들을 중국으로 경도되지 않게 하는 노력 등에 한국이 더 적극 부응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진다.
박 장관은 회담 뒤 특파원 간담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를 협의 중이지만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한-미는 윤 대통령의 상반기 중 방미를 추진 중이며, 한국 쪽은 국빈방문 형식을 희망하고 있다. 박 장관은 또 이번 방미 기간에 뉴욕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북한의 추가 핵실험이 이뤄진다면 국제 정세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고 했다.
한편 박 장관은 블링컨 장관과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문제도 논의했다고 했지만, 미국 영공에서 발견된 중국의 ‘정찰용 기구’ 논란 탓에 블링컨 장관의 방중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시의성이 떨어지게 됐다. 박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중국이 북한의 행동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명한 능력을 갖고 있고 이를 행사할 책임이 있다는 데 동의했다”며 “북한 비핵화는 한-미-중이 오랫동안 협력해온 영역이며,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애초 이날 밤 출발해 베이징에서 친강 외교부장과 회담하고 시진핑 국가주석도 예방할 것으로 예상되던 블링컨 장관은 중국 기구의 영공 침범에 대해 “주권을 침해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반발하며 일정을 취소했다.
워싱턴/ 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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