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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식민지 ‘발견’했으니, 유럽인 소유?…교황청, 교황칙령 잘못 인정

등록 2023-03-31 14:08수정 2023-03-31 14:47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7월26일 캐나다 방문길에 원주민과 함께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7월26일 캐나다 방문길에 원주민과 함께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교황청이 과거 유럽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데 사용됐던 ‘발견의 원칙’을 부인하고 지난 잘못을 인정했다. 발견의 원칙이란 유럽인이 식민지를 “발견”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소유가 된다는 논리다.

로마 교황청은 30일(현지시각) 성명을 내어, 발견의 원칙을 뒷받침했던 “(15세기) 교황칙령들이 원주민들의 평등한 존엄과 권리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했다”며 가톨릭의 믿음을 표현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날 성명은 가톨릭 교회가 과거 유럽의 잘못된 식민지 침략을 공모·지원한 역사를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에이피>(AP) 통신은 이날 성명으로 관련 교황칙령이 공식 폐기된 것은 아니고 교회가 직접적인 식민지 탄압이나 인권 침해를 인정한 것도 아니지만, 원주민 지도자들은 이를 ‘과거의 잘못을 복구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보고 환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황청은 이날 성명에서 식민지 경쟁에 나선 열강들이 교황칙령들을 정치적 목적에서 “조작해 원주민에 대한 부도덕한 행동을 정당화했으며 이에 대해 교회 당국은 때때로 침묵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옳다면서 식민지 시절 원주민에 강요된 동화 정책의 끔찍한 효과를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교황청은 나아가 “가톨릭 교회는 법적·정치적인 ‘발견의 원칙’으로 알려진 개념을 포함해 원주민의 타고난 인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 개념을 부인한다”고 말했다.

이번 성명은 과거 교황청이 포르투갈과 스페인 왕국에 가톨릭 전파를 이유로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을 침략할 수 있도록 종교적 뒷받침을 해준 교황칙령들을 공식 폐기해줄 것으로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진 데 따른 것이다. 15세기 교황칙령에 담긴 ‘발견의 원칙’(또는 발견 교리, 발견 독트린)은 나중에 법 논리로까지 발전했다. 미국 대법원은 1823년 유럽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땅을 “발견했기” 때문에 소유권을 갖는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이 발견의 원칙은 비교적 최근인 2005년 미국 오네이다 원주민과 관련된 재판에서도 인용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캐나다를 방문해 가톨릭 교회가 과거 원주민의 어린 자녀를 부모와 떼어놓고 기숙사 생활을 시키며 강제로 동화 교육을 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당시 원주민들은 발견의 원칙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한 교황칙령들의 공식 폐기를 요구했다.

오네이다 원주민인 미셀 세난도아 시라큐스대학 교수는 이번 교황청 성명에 대해 “올바른 방향의 한 걸음 전진”이라면서도 교황칙령 자체를 폐기하지 않은 점에 대해선 유감을 나타냈다. 그는 이 문제는 “몇 세대에 걸친 원주민에 대한 집단학살 정책을 낳았다. 이제 이런 일을 일으킨 정부에게도 책임을 물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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