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1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고 있다. AP 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8~19일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중국 인사들이 대만 총통 선거에 대한 입장을 집중적으로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25일 블링컨 장관의 방중 결과에 대해 브리핑을 받은 익명의 관계자들을 인용해 대만 총통 선거 관련 논의가 이번 만남에서 중국이 관심을 드러낸 주요 사안이었다고 전했다. 미국 국무장관으로는 5년 만에 방중한 블링컨 장관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친강 중국 외교부장(장관)을 만났다.
중국 인사들은 블링컨 장관에게 내년 1월 선거에 대해 미국이 어떤 입장을 가지는지를 물으면서 민진당 후보인 라이칭더 대만 부총통의 독립 추구 성향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고 한다. 라이 부총통은 차이잉원 대만 총통보다 독립 추구 성향이 강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지난 4월 민진당의 대선 후보가 되고 나서는 중국에 실용적으로 접근하겠다며 강경 발언은 자제하고 있다.
미국 관계자들은 중국 쪽이 2003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원자바오 중국 총리를 접견하던 중 천수이볜 대만 총통에게 경고를 보낸 것을 상기시키며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천 총통이 독립 정서를 부추길 수 있는 국민투표를 추진하는 데 대해 “대만 지도자의 언행은 현상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려는 것으로, 우리가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미국은 특정인을 지지하지 않으며 선거 개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신문은 블링컨 장관을 만난 중국 인사들이 미-중 관계에 대한 브리핑 자료를 몇시간이나 읽으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미국도 불만을 열거했지만 중국보다는 시간이 짧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은 미국이 라이 부총통에게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미국도 중국이 사이버 공격을 비롯한 압박으로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 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중이다.
미-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를 모색한 블링컨 장관의 방중 이후 친강 외교부장의 방미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경우 시 주석이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준비가 이뤄질 수 있다. 물론 변수는 있다. 미국과 대만은 라이 부총통이 8월에 파라과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할 때 미국을 경유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이 부총통이 이 과정에서 미국 주요 인사들을 만나면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며 미-중 관계가 다시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
한편 블링컨 장관은 25일 <시비에스>(CBS)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0일 시 주석을 독재자라고 부른 것에 대한 질문에 “대통령은 언제나 솔직하게, 직설적으로 말한다”고 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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