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원주민이 20일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날 투표에서는 대통령과 의원을 뽑는 선거와 함께 아마존 지역 내 원유채굴 허용을 묻는 국민투표가 동시에 진행됐다. 투표 결과 유권자 59%가 원유채굴에 반했다. AFP 연합뉴스
에콰도르가 21일(현지시각) 국민투표를 통해 아마존 지역 내 국립공원에서 원유 채굴을 중단하기로 했다.
에콰도르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야수니국립공원에 있는 ‘43 광구’의 원유 채굴을 둘러싼 국민투표 결과, 개표가 완료된 92% 가운데 59%가 채굴에 반대했고 41%가 찬성했다고 밝혔다. 유권자 열 명 가운데 여섯 명꼴의 반대로, 사실상 채굴 반대가 확정된 것이다.
야스니 국립공원은 아마존 열대우림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1만㎢ 크기의 공원이다. 새 610종, 양서류 139종, 파충류 211종 등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고 있어, 1989년 유네스코 세계 생물다양성 보존구역으로 지정됐다. 타가에리족과 타로마나니족 등 많은 원주민도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그동안 공원 내 유전은 종종 기름유출 사고로 강과 토양이 오염되는 등 환경파괴 논란을 일으켰다.
원주민 와오라나 족의 대표인 네모 귀키타는 “에콰도르인들이 대의에 모두 나서 우리 원주민 형제자매들에게 삶의 기회를 주고 전세계에 우리가 아마존 열대우림을 지킨다는 걸 보여줬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야스니 국립공원의 원유 채굴을 둘러싼 논란은 200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43광구에서 원유가 발견되자,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은
“부자 나라들이 기금을 모아 일부 보상해 주면 원유 채굴을 하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보상 금액은 원유채굴 예상 수익금의 50% 남짓한 36억 달러(4조8천억원)로 설정했다.
그러나 부자나라들의 호응이 없자, 에콰도르는 2013년 이 지역의 원유채굴에 들어갔다. 이번엔 에콰도르 내에서 원주민과 환경단체가 “원유채굴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자”며 서명운동에 나서는 등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국민투표 청원 운동은 10년 남짓한 법정 투쟁을 거치는 지루한 싸움이었지만, 지난 5월 마침내 대법원은 “국민투표 청원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판결은 기예르모 라소 현 대통령에게 정치적 타격이다. 라소 대통령은 원유 수익이 나라 경제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며 원유 채굴을 지지해왔다. 현재 이곳 43광구에서 하루 6만 배럴의 원유를 길어올리고 있는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에콰도르는 이번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이제 유전운영을 멈추고 숲을 복원해야 한다.
원유는 지난해 에콰도르 수출의 35.5%를 차지하는 등 주력 수출상품이다. 야스니 국립공원의 43광구에서는 에콰도르 전체 원유 생산의 12%가 채굴된다. 페르난도 산투스 에너지장관은 “이번 국민투표로 우리는 120억달러(16조원)를 잃게 된다”며 “나라 경제에 큰 손해를 입혔다”고 말했다.
이날 국민투표는 차기 대통령과 의원들을 뽑는 선거와 함께 치러졌다. 대선에선 진보진영의 루이사 곤살레스 후보와 보수진영의 다니엘 노보아 후보가 나란히 1, 2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결선 투표는 10월 치러진다. 이번 대선은 유세 도중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 후보가 암살당하는 혼란을 겪으며 진행됐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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