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1월 대선에서 재대결 가능성이 높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6 의사당 난동 사태’ 3돌을 맞아 상대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며 맹비난했다. 연초부터 매우 적대적인 선거전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주를 받은 이들이 의사당을 점거한 사태 3돌을 하루 앞둔 5일, 펜실베이니아주 밸리포지에서 한 유세에서 민주주의는 “2024년 선거의 모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민주주의가 아직도 미국의 신성한 대의인지는 우리 시대의 가장 시급한 질문”이라며 “트럼프는 민주주의를 기꺼이 희생시키면서 집권할 의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1·6 사태로 “우리는 미국을 거의 잃을 뻔했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도전 선언 이후 첫 대중 유세 장소로 선택한 밸리포지는 수도 구실을 하던 필라델피아를 영국군에 빼앗긴 조지 워싱턴의 군대가 1777~1778년 겨울에 주둔한 곳이다. 미국인들이 영국 국왕의 지배에 저항해 독립을 쟁취한 역사, 주변의 권유를 물리치며 왕위에 오르지 않고 연임 대통령만 한 워싱턴을 상기시키려고 이곳을 골랐다.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왕 같은 존재가 되려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그때 다시는 왕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며 “트럼프는 역사를 훔치려 했고, 같은 식으로 선거를 훔치려 했다”고 말했다.
열흘 뒤 공화당의 첫 경선이 예정된 아이오와주에서 이날 저녁 유세에 나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늘 바이든은 한심하게도 공포를 조장하는 유세를 했다”며 “바이든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진짜 위협”이라고 반박했다. 또 “그들은 정부를 무기화했다”며, 유력 대선 후보인 자신을 1·6 사태 등과 관련해 기소한 것은 민주주의 파괴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바이든은 조지 워싱턴의 유산을 남용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6일 유세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독재자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1·6 사태로 처벌받고 있는 1230여명에 대해서는 “인질들”이라고 했다.
둘의 ‘원격 설전’은 1·6 사태와 트럼프 전 대통령 처벌을 둘러싼 ‘민주주의 논란’이 대선전의 주요 전선이 될 것임을 보여준다. 바이든 대통령 선거캠프는 이번 유세는 대선이 민주주의 수호 투쟁임을 강조하는 선거운동의 시작점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기소된 처지를 역공에 동원하고 있다. 지난달 뉴햄프셔주 유세에서도 “선거에서 이기려고 미국 헌법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위반”했다며 바이든 대통령을 비난했다.
이런 가운데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자격을 심사하겠다며 2월8일을 심리 기일로 지정했다.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지난달 19일 ‘반란에 가담한 공직자는 다시 공직을 맡을 수 없다’는 수정헌법 조항을 근거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콜로라도주 공화당 경선에 참여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그의 변호인단은 지난 3일 1·6 사태는 폭력 시위일 뿐이라며 연방대법원에 상소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메인주 국무장관의 같은 결정에 대해서도 주 법원에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30여개 주에서 제기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출마 자격 시비는 연방대법원이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2000년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와 민주당 앨 고어 후보의 대결 때 플로리다주 수검표를 중단시켜 부시 후보에게 승리를 안겨준 이후 연방대법원이 대선에 관해 다시 결정적 판단을 내리게 됐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