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일리는 친바이든이다.”
“트럼프한테는 혼란이 따라다닌다.”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의 중요 고비가 될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 전날인 22일, 선두를 달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를 뒤쫓는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는 서로를 정조준하며 결전을 준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밤 뉴햄프셔주 러코니아에서 한 유세에서 “내일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투표를 하게 된다”며 “글로벌리스트, 공산주의자들, 바이든 지지자들은 헤일리한테 투표한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을 원하는 세력이 약체 후보인 헤일리 전 대사를 본선으로 보내려고 그를 지지한다는 주장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업인 비벡 라마스와미, 팀 스콧 상원의원,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 등 한때 경선에서 맞붙었다가 자신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이들을 데리고 나와 세 과시도 했다. 라마스와미는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를 촉구했다.
헤일리 전 대사는 뉴햄프셔주 프랭클린에서 한 유세에서 “난 트럼프에게 두번 투표했다”면서도 “우리는 혼란스러운 나라와 불타는 세상이 4년 더 이어지도록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우리는 견뎌낼 수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미디어 엘리트들이 자신에게 중도 사퇴를 요구한다면서 “미국은 대관식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신봉한다”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제왕적 인물로 지목한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앞서 ‘엑스’(X·옛 트위터)에서 헤일리 전 대사를 “새대가리”라고 공격한 바 있다. 이에 맞서 헤일리 전 대사도 “그는 우리의 상승세에 겁을 먹었다”고 격하게 맞받아쳤다.
앞선 아이오와 경선에서 3위에 그친 헤일리 전 대사는 고학력자가 많고 중산층이 두터워 유권자 구성이 유리한 뉴햄프셔에서 승리가 절실하다. 역대 공화당 경선에서 첫번째 경선지 아이오와나 두번째 뉴햄프셔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후보는 본선 진출 기회가 희박했다.
하지만 서퍽대와 보스턴글로브 등이 이날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에서 투표 의향이 있는 유권자들의 57%가 트럼프 전 대통령, 38%가 헤일리 전 대사에게 표를 주겠다고 했다. 헤일리 전 대사는 전날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의 사퇴로 양자 구도가 된 게 유리하다고 주장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디샌티스 주지사를 응원했던 이들 가운데 60%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표를 줄 것이라는 예측 조사 결과가 나온 상태다. 이기거나, 지더라도 간발의 차이로 져야 선거운동 동력을 살려나갈 수 있는 헤일리 전 대사로서는 위기 상황이다.
헤일리 전 대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더 지지하는 공화당원들이 아니라 자신을 더 많이 지지하는 무당파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는 무당파로 등록한 유권자들도 표를 던질 수 있다. 전체 유권자들의 40%가량을 차지하는 이들은 공화당원들보다 수가 많다. 일각에서는 양자 대결이 달아올라 역대 최고 투표율이 나올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여유 있게 이기면 대세론에 더 힘이 실리게 된다. 그는 유세에서 “사기꾼 같은 바이든을 물리쳐야 한다”며 재대결을 기정사실화하는 모습도 보였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