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의 선두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의 유세장에서 그의 인종차별적 발언에 항의하는 시위와 몸싸움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인종갈등이 이번 미국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는 5개 주 경선이 동시에 치러지는 오는 15일 ‘미니 슈퍼화요일’을 나흘 앞둔 11일 오후 6시부터 시카고 일리노이대학에서 대규모 유세를 열 계획이었으나, 지지자들과 반대파 사이의 논쟁이 주먹다짐으로 번지면서 유세를 전격 취소했다.
당시 유세 현장 영상을 보면, 트럼프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이 서로 어깨를 밀치거나 언쟁을 벌이면서 분위기가 격해졌다. 흑인으로 보이는 일부 트럼프 반대자가 연단에 뛰어 올라가 ‘반 트럼프’ 주장을 펼치다 강제로 끌려 내려오기도 했다.
12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의 유세가 벌어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아이엑스 경기장에서 트럼프 지지자(중앙 오른쪽)와 트럼프 반대자(중앙 왼쪽)가 멱살잡이를 잡고 있다. 클리블랜드/AP 연합뉴스
행사장 밖에선 히스패닉계 유권자 1천여명이 “나는 강간범이 아니다” 등의 팻말을 들고 반 트럼프 시위를 벌였으며, 이에 맞서 트럼프 지지자들도 “트럼프”를 연호하는 등 아수라장이 됐다. 트럼프는 그동안 멕시코 이민자들을 두고 “강간범”이라고 하거나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워야 한다” 등의 막말과 극단적 주장을 해왔다.
주말 내내 트럼프 유세장은 이와 비슷한 ‘반 트럼프’ 항의 시위로 얼룩졌다. 앞서 미주리 주의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트럼프 집회에서도 지지자와 반대파가 물리적 충돌을 벌여 31명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또한 일요일인 12일에도 오하이오 주 데이튼 유세에서 반 트럼프 시위자가 트럼프의 연설 도중에 단상으로 돌진해 연설이 2분 정도 중단됐다. 미주리 주 캔자스시티 유세에선 “인종차별주의를 추방하라” 등의 피켓을 든 시위자들이 장내에 들어와 구호를 외쳐 연설이 20분가량 중단됐다.
전문가들은 우려했던 일이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틴 토드 화이트맨 전 뉴저지 주지사(공화)는 지지자들의 분노를 분출하게 하는 트럼프의 발언들에 걱정을 해왔다고 밝혔다. 화이트맨은 <뉴욕 타임스>에 “그가 자극해놓은 감정들을 쉽게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라며 “그에 따른 (안 좋은) 결과들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는 반성하는 모습보다는 “일부(시위자들)는 공산주의의 친구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지지자들”이라며 엉뚱한 쪽으로 화살을 돌렸다. 그러나 샌더스는 “우리의 지지자들이 선동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지자들이 한 일은 여러 방식으로 폭력을 조장하고 있는 후보(트럼프)에 대해 대응한 것”이라고 받아쳤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공화 대선 후보들도 시카고 유세 취소를 계기로 트럼프의 인종차별주의 모습을 일제히 비판했다.
미국 사회의 가장 예민한 부분인 인종갈등을 부각시킨 이 사건들이 15일 ‘미니 슈퍼화요일’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의 결집 효과로 나타날지, 지지자 이탈로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어찌됐든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지명돼도 소수인종들이 등을 돌리면서 본선에선 경쟁력을 상당히 잠식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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