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각) 미국 미시간주 워런의 한 공장에서 경제정책에 대한 연설을 마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지자들과 반갑게 손을 잡고 있다. 워런/AP 연합뉴스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는 11일(현지시각) 미국과 일본 등 12개국이 참여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티피피)에 대해 “나는 지금 그것(티피피)을 반대하고 있고, 선거가 끝난 뒤에도 반대할 것이며, 대통령이 돼도 반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 입장을 재확인 것이지만 발언의 강도는 이전보다 세진 편이어서, 보호무역주의를 놓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선명성 경쟁을 벌이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클린턴 후보는 이날 자신의 경제공약을 발표하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유세에서 “티피피를 포함해 우리 일자리를 죽이고 임금을 억제하는 어떤 무역협정도 중단할 것”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그의 발언은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면 다시 티피피에 찬성할 것’이라는 트럼프 쪽의 공격을 차단하고, 대선 핵심 승부처로 떠오른 미 중부의 ‘러스트 벨트’(쇠락한 제조업 지대)의 표심을 끌어안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은 “과거의 무역협정들이 미국인들에게 실현되지 않은 장밋빛 시나리오로 포장돼 홍보됐고, 이제 공장이 문을 닫고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미시간과 미국 전역의 많은 공동체에서 공허한 약속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또 “너무나 많은 기업이 상품을 외국에 팔 목적으로 무역협정 성사를 위해 로비를 해 놓고 정작 그들은 (공장을) 외국으로 이전한 뒤 만든 물건을 미국에 다시 되팔았다”며 “중국과 다른 나라들이 너무 오랫동안 (무역)시스템에 대해 장난을 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미국의 노동자와 기업 이익을 편취하는 중국이나 다른 누구와도 맞설 것”이라며 “처음으로 무역검찰관을 임명하고, 관련 법 집행 관리 숫자를 3배로 늘리며, 규칙을 위반하는 국가에 대한 맞춤형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등 불공정 무역관행 차단 노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무장관 시절 티피피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등 자유무역를 옹호했던 클린턴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의 민주당 경선 경쟁 과정에서 ‘티피피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등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번 경제공약 발표 자리에선 트럼프가 즐겨쓰는 ‘일자리를 죽이는 무역협정’ ‘중국이 장난을 쳤다’ 등의 표현까지 차용하며 레토릭(말치장) 수위를 잔뜩 높였다. 또한 민주·공화 양당 모두 정강정책에서도 보호무역 강화를 천명하고 있어, 누가 대통령이 되든 통상노선 변화에 따른 주변국과의 마찰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클린턴은 통상 분야에선 트럼프와 한 목소리를 냈지만 국내 경제정책과 관련해선 트럼프의 ‘부자 감세’에 맞서 ‘부자 증세’를 강력하게 내세웠다. 클린턴은 “억만장자들이 그들의 비서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받아서는 안 된다”며 “‘버핏 룰’을 지지한다. 거기에 더해 억만장자에 적용되는 새로운 세금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버핏 룰’은 연간 100만달러를 넘게 버는 ‘슈퍼 부자’에게는 최저 30%의 소득세율을 적용하자는 것으로, 버핏이 2011년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제시했다.
클린턴은 또 “250억달러의 정부 초기자금으로 ‘인프라스트럭처 은행’을 만들면 2500억달러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사회간접자본 개선에 정부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최저임금 15달러로 인상, 대학 학자금 부담 경감 등의 기존 대책을 다시한번 강조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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