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왼쪽) 하원의장이 지난 10일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공화당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서 공화당이 격렬한 내분으로 빠져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는 11일 자신에 대한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 전 대선 후보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 공화당 주류들의 지지 철회에 맞서, 자신의 갈 길을 가겠다며 보복도 시사했다. 트럼프의 대선 출마 이후 대립과 화해를 거듭하던 양쪽은 이젠 화해 불가능한 내전으로 빨려들고 있다.
트럼프의 추문과 지지율 하락으로 현재 11월 8일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연방의회 상·하원 양원에서도 공화당이 패할 수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11일 보도했다. 현재 하원에서 공화당은 247석으로 민주당의 188석을 크게 앞선다. 하지만, 최근 자체 조사에서 29석 이상을 잃을 수 있으며, 상황이 악화될 경우 다수당 지위를 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주 발표된 <쿡 폴리티컬 리포트> 평가를 보면, 현재 공화당이 차지한 45개 선거구가 경합 쪽으로 돌아선 반면, 민주당이 차지한 의석 중 경합은 11석에 그쳐 대조를 보인다.
상원의 경우, 현재 공화당 54석, 민주당 44석, 무소속 2석이다. 그런데 <유에스에이 투데이>, <뉴욕 타임스> 등 대부분 미 언론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은 4~5석을 잃고, 민주당은 그만큼 의석을 더할 것으로 예측된다.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상원 의장은 팀 케인 부통령 당선자의 몫이어서 자칫하면 상원에서도 다수당 지위가 뒤집어질 수 있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트럼프와의 관계 단절을 선언한 것도 전통적인 공화당 유권자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여 의회 선거라도 이기려는 분투의 일환이다. 당 주류 쪽은 공화당 유권자 중 트럼프에게 호감을 보이지 않는 대학 교육 이상의 중도우익 성향이 25~33% 가량 된다고 본다. 하지만, ‘트럼프와의 거리두기’ 전략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현재, 의회 선거에서 경합지인 선거구의 공화당 의원들 다수는 트럼프를 반대하거나 비판적 입장을 보여온 중도 성향이다. 이곳에서 지지율이 빠지는 것은 트럼프 지지성향 공화당 유권자들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당 주류의 ‘의회 중시’ 전략이 중도 성향 유권자를 재결집시키기보다, 트럼프 지지층의 이탈만 가속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공화당 하원의원 중 낙선 위기에 처한 이들은 일리아나 로수-리티넌 및 카를로스 커벨로(이상 플로리다), 윌 허드(텍사스), 바버라 컴스톡(버지니아), 마이크 커프먼(콜로라도) 등 일찍부터 트럼프를 비판한 의원들이다. 하원 선거를 추적해온 <쿡 폴리티컬 리포트>의 데이비드 워서먼은 “트럼프와 가장 거리를 뒀던 공화당 의원들이 낙선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건 역설”이라고 지적했다.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를 둘러싼 내분이 공화당 지역구의 침몰을 위협하고 있다”며 트럼프와 공화당 주류의 내전이 결국 공화당 의원 전체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라이언 의장 등 당 주류가 이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것은 선거 뒤 ‘당 주도권’은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보인다. 트럼프와의 거리두기를 하지 않는다면, 선거 뒤에도 트럼프와 그 지지층으로부터 당이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공화당 주류의 싸움은 트럼프 지지층과 전통적 중도우파 성향 지지층을 누가 더 결집시키느냐는 싸움이기도 하다. 공화당은 이미 승패가 기울어진 대선보다 의회 선거 결과가 향후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 전쟁터로 바뀌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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