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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플로리다 승리 열쇠 쥔 121만명 보수적 쿠바계, 민주당 쪽으로 미세 이동

등록 2016-10-23 17:36수정 2016-10-23 21:47

마이애미 ‘리틀 아바나’ 르포
미용실 사장 소리지르며 “트럼프는 파시스트”
멕시코인 등 히스패닉 비하 발언 탓 트럼프에 적대감

오바마 대통령 인기도 상당…“소수민족 배려, 쿠바 관계정상화”
1세대는 “나는 합법적 이민자…불법 이민자 추방 찬성” 주장도
쿠바계 미국인은 2010년 인구조사 기준으로 178만명 안팎이다. 미국 내 히스패닉 인구 가운데 3위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이 가운데 70%가량인 121만여명이 플로리다주에 거주한다. 특히, 역사적으로 공화당 쪽에 기울었던 쿠바계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 대해 거의 엇비슷한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엔 청신호다.

지난 17일(현지시각) 오후 마이매미 시내 쿠바계 미국인들 밀집지역인 ‘리틀 아바나’의 거리 풍경. 시가(궐련) 가게가 거리 곳곳에 있다.
지난 17일(현지시각) 오후 마이매미 시내 쿠바계 미국인들 밀집지역인 ‘리틀 아바나’의 거리 풍경. 시가(궐련) 가게가 거리 곳곳에 있다.
지난 17일(현지시각) 오후, 쿠바 상가와 쿠바인 거주지가 밀집된 마이애미 시내의 ‘리틀 아바나’를 찾았다. 거리 곳곳마다 ‘시가’(궐련) 가게가 점점이 박혀 있고, 쿠바의 대표적인 음료인 ‘모히토’를 선전하는 가게들의 알림판이 경쟁하듯 걸려 있다. 음식점에선 경쾌한 쿠바 음악에 춤을 추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손님이 없어 한산해 보이는 ‘마리나 뷰티 살롱’ 미용실을 먼저 기웃거렸다. 사장과 직원 2명 가운데,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직원인 기예르모 사에스(48) 한명뿐이었다. 사에스는 클린턴 지지자였다. 그는 “트럼프의 사업감각은 좋아 보이지만 극단적으로 공격적”이라며 “특히, 소수민족에 대한 트럼프의 말들은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지난 17일(현지시각) 오후 마이매미 시내 쿠바계 미국인들 밀집지역인 ‘리틀 아바나’의 버스 정류장 근처 쉼터에서 쿠바인들이 체스 등을 즐기고 있다.
지난 17일(현지시각) 오후 마이매미 시내 쿠바계 미국인들 밀집지역인 ‘리틀 아바나’의 버스 정류장 근처 쉼터에서 쿠바인들이 체스 등을 즐기고 있다.
지난 2004년 쿠바에서 건너왔다는 사에스는 “나는 공화당을 찍기도 하고 민주당을 찍기도 한다”며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무척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가 50년 동안 안고 있던 문제를 해결했다. 쿠바인들이 자본주의를 알게 했다. 이제 쿠바인들도 더 많이 미국에 들어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미용실에 있던 다른 두 사람한테도 누구를 찍을 거냐고 통역을 부탁했다. 사에스의 질문을 들은 사장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사에스의 통역에 따르면 “트럼프는 파시스트”라는 뜻이란다. 그 사장은 “트럼프는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을 증오하고, 강도라고 하고, 강간범이라고 한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지난 17일(현지시각) 오후 마이매미 시내 쿠바계 미국인들 밀집지역인 ‘리틀 아바나’의 거리 풍경. 손님들이 한 식당에서 흥겨운 쿠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지난 17일(현지시각) 오후 마이매미 시내 쿠바계 미국인들 밀집지역인 ‘리틀 아바나’의 거리 풍경. 손님들이 한 식당에서 흥겨운 쿠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사에스처럼, 2세대나 3세대 쿠바계는 무당파에 가깝거나 민주당 쪽 성향으로 기울고 있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의 유산이 커보였다. ‘리틀 아바나’에서 택시 운전을 한다는 란디 팔콘(26)도 “소수민족을 배려하는 오바마를 무척 좋아한다”며 “히스패닉을 차별하는 트럼프보다는 클린턴을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트럼프를 찍겠다는 쿠바계들도 있었다. ‘리틀 아바나’의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한 쿠바인은 끝까지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하며 “카스트로 형제가 쿠바를 다 말아먹었다. 미국도 (빌 클린턴 및 힐러리 클린턴) 부부가 다 말아먹으려고 하고 있다. 그러면 안되는 것 아니냐”며 “트럼프를 찍을 것”이라고 잘라말했다.

지난 17일(현지시각) 오후 마이매미 시내 쿠바계 미국인들 밀집지역인 ‘리틀 아바나’의 거리 풍경. 한 건물 벽에 쿠바를 연상케 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지난 17일(현지시각) 오후 마이매미 시내 쿠바계 미국인들 밀집지역인 ‘리틀 아바나’의 거리 풍경. 한 건물 벽에 쿠바를 연상케 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심지어 트럼프의 반 이민정책을 찬성하는 쿠바계도 있었다. 존 케네디 대통령이 1961년 피델 카스트로 쿠바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쿠바 망명자들을 훈련시켜 침투시켰던 ‘피그만 침공 작전’의 한 참전군인은 “트럼프가 쫓아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불법 이민자다. 나는 합법적인 이민자”라고 강조했다. 그는 “불법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미국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맞다”며 트럼프를 거듭 옹호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민주당 쪽으로 미세하게 기운 쿠바계 민심은 플로리다 판세의 축소판이었다.

마이애미/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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