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캠프에서 최고경영자(CEO)로 일했던 스티븐 배넌이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자리한 트럼프타워를 방문했다 떠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남성의 관심을 끌려는 여성들이 인터넷을 망치고 있고, 무슬림 이민자들은 질병을 갖고 미국으로 들어오고 있으며,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동성애자들은 다시 벽장 속으로 집어넣어야 한다.’
미국 극우 인터넷 매체 <브라이트바트>를 통해 인종·종교·성차별적 발언들을 무차별적으로 쏟아냈던 스티븐 배넌(62·사진)이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수석고문으로 임명된 것을 두고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고 미국 <시엔엔>(CNN) 방송 등이 14일 전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성명을 내어 “도널드 트럼프가 배넌을 백악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자리 중 하나에 임명한 것은 백인우월주의 사상을 홍보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유대인 차별철폐 운동단체인 ‘반명예훼손리그’와 무슬림 인권단체 ‘미국이슬람관계위원회’ 등 관련 시민단체들도 배넌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 극단주의 테러 감시단체 ‘시테’는 “배넌이 수석전략가로 임명된 뒤 극우 누리집을 중심으로 ‘반유대주의는 불법이 아니다’와 같은 증오성 게시물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밝혔다.
골드만삭스에서 일했던 금융인 출신인 배넌은 2012년 극우 온라인매체 <브라이트바트>의 대표가 된 뒤 백인우월주의, 여성 차별주의 보도에 앞장섰다. 이 매체가 2015~16년 쏟아낸 기사 제목만 봐도, “피임은 여성을 덜 매력적이고 미치게 만든다”, “당신 아이들이 페미니스트라고? 차라리 암에 걸리는 게 낫다”, “온라인 폭력 해결책은 간단하다: 여성을 로그오프 시켜야”, “기술 산업에서 여성 차별은 없다. 여성들이 면접을 망칠 뿐이다” 등 극심한 여성 차별적 기사가 적지 않다. 또 2015년 7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흑인교회 총기난사 직후 노예제를 지지했던 남부연합기 사용을 확산시킬 것을 주장하는 등 인종적 우월주의에 가득 찬 기사도 많다. 배넌 자신도 과거 “쌍둥이 딸들이 유대인 학생들이 많은 학교에 다니는 걸 반대했다”는 등 유대인 차별적 발언과 가정폭력 이력이 드러나며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스티븐 배넌이 창립한 극우 온라인 매체 <브라이트바트> 누리집 화면. <브라이트바트> 누리집 갈무리
배넌은 스스로를 ‘대안 우파’(alt-right)로 자처한다. 기존의 정치 세력을 모두 ‘평범한 미국인을 무시하는 기득권’이라 비난해온 배넌과 그의 온라인 매체 <브라이트바트>의 성장은 ‘아웃사이더 정치인’ 트럼프의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선이 치러진 지난 8일 <브라이트바트>의 페이스북 계정 접속자 수는 <시엔엔>, <폭스 뉴스> 등 기성 언론의 4배를 넘었다. 2014년 창설된 <브라이트바트> 영국 런던지부의 편집장 라힘 카삼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이끌었던 나이절 패라지 영국독립당 대표의 비서실장이기도 하다. 나이절 패라지 대표는 지난 8월 미시시피에서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는 공개 유세에 함께했고, 지난 12일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트럼프와 만나기도 했다.
배넌은 지난 8월 폴 매너포트 선대위원장을 이어 트럼프 캠프의 최고경영자(CEO)로 영입됐다. 2차 텔레비전 토론 직전 빌 클린턴의 성추문과 관련된 여성들을 앞세운 기자회견도 그가 주도한 것이다.
배넌의 수석전략가 임명을 두고 각계에서 비난 성명이 이어지고 있지만, 켈리앤 콘웨이 트럼프 캠프 선대본부장은 “배넌의 이력 전체를 봐야 한다. 그는 하버드 경영학(MBA) 학위가 있는 매우 똑똑한 전략가”라며 수석전략가 임명 철회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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