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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외국산에 밀려 실직…노동자 분노, 트럼프가 얘기해줘”

등록 2016-11-21 16:26수정 2016-11-21 22:18

[트럼프의 미국- 뒤집힌 민주 텃밭 미시간 르포①]
자동차 3사 몰린 러스트벨트 격앙
지지했던 오바마, 자유무역 옹호
클린턴은 TPP 설계자 ‘같은 기조’
엘지·삼성 등 한국산 들이닥쳐
월풀 공장도 황량한 빈터로 전락
“트럼프만이 노동자 심정 대변”

미국 미시간주 머콤카운티의 주택가에는 아직도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 팻말이 서 있다.
미국 미시간주 머콤카운티의 주택가에는 아직도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 팻말이 서 있다.
크리스 바이텔(44)은 백인 노동자다.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인근 머콤카운티에 위치한 크라이슬러 자동차 공장에서 23년째 일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크라이슬러에 들어와 일을 시작했고, 대학도 회사를 다니면서 졸업했다. 바이텔은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에 투표했다. 2012년 대선에선 제3당 후보를 찍었다. 전형적인 무당파인 그는, 올해 대선에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찍었다.

지난 16일(현지시각) 오후 3시40분쯤, 크라이슬러 공장에서 멀지 않은 작은 식당에서 3교대로 일하는 바이텔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그는 식당에 앉자마자 소시지 2개가 들어간 간단한 식사를 주문했다.

미시간은 미국 자동차산업의 상징인 디트로이트를 품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와 함께 러스트 벨트의 ‘앵그리(성난) 백인 노동자들’이 민주당에 반란을 일으킨 대표적인 곳이다. 특히 미시간은 1992년 이후 치러진 여섯번의 대선에서 한번도 공화당 후보를 택하지 않았던 곳이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227만9805표(47.6%)를 길어올렸다. 힐러리 클린턴은 226만8193표(47.3%)를 얻었다. 1만여표가 조금 넘는 박빙의 승리였지만, 미시간 선거인단 16표는 ‘승자독식제’에 따라 모두 트럼프 차지가 됐다. 미시간이라는 마지막 방화벽이 무너지면서 클린턴도 함께 무너졌다.

치열했던 선거가 끝나고 미시간은 겉으론 평온을 되찾은 듯했다. 공장 주변 주택가를 돌아다녀 보니 한두 군데를 제외하곤 후보 지지 팻말은 더이상 눈에 띄지 않는다. 공장 주차장엔 직원들의 출근차가 빼곡하게 가득 차 있고, 공장 앞 식당도 북적거리는 등 평온한 일상이 흘러갔다.

하지만 대선 얘기를 꺼내면 분위기는 금세 열정과 분노로 되돌아갔다. 바이텔은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의 등장에 희망을 걸었던 사람이다.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는 제조업 공동화 현상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고 판단했다. 오바마는 당시만 해도 자유무역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오바마는 취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티피피)을 비롯한 자유무역을 추진했다. 4년 뒤인 2012년 선거에서, 그는 오바마를 찍지 않았다. 밋 롬니 공화당 후보도 부유한 사람의 권리만 옹호하는 것 같았다. 바이텔은 “미국 사회에 대한 항의 표시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제3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이번 대선에서 바이텔이 트럼프를 택한 이유도 분명했다. 그는 “노동자들은 언론에 티피피를 반대하는 우리들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다. 그런데 트럼프가 그 얘기를 대신 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클린턴 후보도 선거운동 기간에는 현재 형태의 티피피에는 반대한다고 애매하게 입장을 바꿨다. 하지만 클린턴은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티피피를 직접 설계했다. 그는 “그러면 여기 사람들이 누구를 지지할지 금방 이해가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디트로이트에서 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머콤카운티에는 포드, 지엠, 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빅3’ 공장들이 모두 모여 있다. 84만명인 머콤카운티 주민 대부분이 자동차산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노동자 밀집지역인 머콤은 미시간주 안에서도 민주당 성향이 매우 강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이곳도 트럼프 지지로 돌아섰다. 트럼프 51.5%, 클린턴 42.1%로, 미시간 전체 평균보다 트럼프에게 더 표를 몰아줬다.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가 집약된 투표율이었고, 미시간의 승패를 좌우할 만한 득표율이었다. 트럼프는 9월부터 머콤에서 세번이나 유세를 하며 공을 들였다. 반면, 민주당은 빌 클린턴이나 팀 케인 부통령 후보를 보냈을 뿐, 힐러리 클린턴이 직접 오진 않았다. ‘집토끼’로 생각해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렸음이 분명해 보인다.

바이텔은 티피피에 대한 미시간 유권자들의 두려움을 월풀의 사례로 설명했다. 엘지나 삼성의 냉장고·세탁기 등 값싼 제품이 들어오면서 미시간에 있던 월풀 공장은 문을 닫았다. “그 넓던 공장이 텅 빈 터로 바뀌었다. 그것을 지켜봐야 했던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사람들은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고 그는 말했다.

크리스 바이텔(44)
크리스 바이텔(44)
월풀은 1911년 미시간에서 설립된 전통의 미국 가전업체이자 최근까지도 가전업계 판매량 세계 1위 회사로, 미 전역에 공장을 두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가전사들에 시장을 점점 뺏기면서 해외로 공장을 이전했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대대적인 사업 구조조정을 벌여 수익성이 나지 않는 미국 공장들의 문을 닫았다.

바이텔이 보기에, 티피피가 체결되면 임금이 더 싼 미국 바깥에서 값싼 제품이 계속 들어와 미국 공장이 황폐화되는 현상은 더 악화될 게 뻔했다. 노동조합도 그들에겐 더이상 기댈 언덕이 아니었다. 바이텔은 노조를 향해 “멍청이들”이라며 “노조도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노동계층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화가 난 듯했다. 그는 “왜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지지하게 됐는지를 한국 사람들이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머콤카운티(미시간)/글·사진 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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