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총기 판매점 진열대에 전투용 자동소총들이 진열돼 있다. Flickr
지난 10월1일 일요일 밤 10시께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야외 공연장. 수많은 관광객이 록 공연을 즐기던 곳에 난데없는 총소리가 울리며 총탄이 빗발쳤다. 축제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그 자리에서 59명이 숨지고 50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탄알들은 공연장 건너편 만델레이 베이 호텔 32층의 객실에서 날아들었다. 끔찍한 참극의 범인은 현지 주민인 64살 백인 남성 스티븐 패독. 조직적 테러 혐의는 물론 총기 관련 범죄 전과도 없는 평범한 은퇴자의 단독 범행으로 밝혀졌다. 전형적인 ‘외로운 늑대’형 범죄였다.
라스베이거스 테러가 나기 9시간 전에는 캔자스주 로렌스의 한 대학가 인근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 20대 젊은이 3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사소한 말다툼이 돌이킬 수 없는 참극을 불렀다. 지역사회에선 중대 뉴스였지만 미국 전역의 관심을 끌진 못했다. 경찰은 범인을 잡지 못했고,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주변의 누군가가 잔뜩 불만인 상태로 부글부글 끓고 있으면서 총기를 만지작거린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총기 소유가 수정헌법으로 보장된 미국 사회가 그런 상태라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 시사주간 <네이션> 온라인판이 23일(현지시각) “언제든 싸울 태세가 돼 있으면서 총기 무장을 한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한 경고는 충격을 넘어 섬뜩할 지경이다.
잡지는 2015년 미국 듀크대학의 정신의학자 제프리 스완슨 교수가 학술 저널 <행동과학과 법>에 발표한 연구조사 논문을 인용해 “미국인 400만명(성인 인구의 9%)이 분노·충동 조절 장애를 겪고 있거나 겪은 전력이 있으며, 바로 그들이 손쉽게 총기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또 성인 인구의 1.5%는 화가 나 있거나, 충동적이며, 총기를 소지하고 다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소 66명 중 1명, 많게는 10명 중 1명이 언제 폭발할지 모를 ‘걸어다니는 폭탄’인 셈이다. 스완슨 교수는 “이 조사는 몇년 전 이뤄진데다, 이후로 은밀한 총기 소지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만큼 지금의 실제 수치는 더 높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위 연구는 “총기를 여러 정 보유한 사람이, 실제로 총기를 휴대한 채, 충동적이고 화난 행동을 하는” 3가지 조합이 뚜렷하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실제로 총기를 6정 이상 보유한 사람은 ‘총기를 소지한 채,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에 화가 나 있을’ 확률이 딱 1정만 소유한 사람에 견줘 4배나 높았다고 한다.
지난 1일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진 미국 라스베이거스 중심가 현장. 백인 남성 범인은 투숙 중이던 만델레이 호텔 32층(1번)에서 건너편 야외 공연장(2번)으로 자동 소총을 난사했다. 위키피디아
이런 위험성은 총기 소유를 적극 옹호하는 전미총기협회(NRA)도 인지하고 있다. 협회는 총기 규제를 회피하려는 방안의 하나로 정신 보건과 치료의 강화를 요구하고 나섰다고 한다. 하지만 스완슨 교수는 더 많은 총기 소유자가 정신건강 치료를 받는다 해도 그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사이코패스(반사회성 인격장애)의 일부 기준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이들 ‘분노한 총기 소지자’는 술이나 마약에 중독돼 있거나 우울증, 불안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도박 강박증, 그밖의 심신 장애에 시달리고 있으며, 법규상 총기 구매가 허용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란 것이다.
미국에서 소소한 총기 살상 사건은 이제 빅 뉴스가 아니다. 라스베이거스 난사 사건에 로렌스 총기 사건이 묻힌 것이 한 사례다. <네이션>은 그러나 “오늘날 미국 사회가 대규모 총기난사 사건에 관심이 쏠려 있지만 실제론 로렌스 총격 사건과 같은 일상적인 총기 폭력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훨씬 많다”고 지적했다. 2016년 통계만 봐도, 4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사건으로 정의되는 대량 총기 살해 사건은 미국 내 총기피살 사건 전체의 2%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미국 사회가 라스베이거스 총격범처럼 총기 소유 부적격 전과가 없는 자의 예측불가능한 대형 참사를 예방할 순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로렌스 사건과 같은 유형의 총기 폭력이나 총기 자살 사건은 더 현명한 공공정책으로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고 <네이션>은 지적했다. 대다수 나라에서 사소한 다툼은 기껏해야 주먹다짐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그러나 미국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사람이 총기로 무장할 수 있어서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참사로 기록된 지난 1일 라스베이거스 총격 사건의 희생자들의 사진이 라스베이거스 커뮤니티 힐링가든에 걸려 있다. 라스베이거스/AP 연합뉴스
정신질환자 대다수는 특별한 폭력 성향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만을 대상으로 한 총기 규제 강화가 능사일 순 없다. 한층 엄격하고 보편적인 총기 규제가 최선의 대안 중 하나로 떠오르는 이유다. 스완슨 교수는 “미국 전체의 폭력 범죄에서 정신질환자가 가해자인 비율은 약 4%에 불과하다”며 “어떻게든 정신질환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해도 폭력이 줄어드는 정도는 극히 미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특히 “오늘은 주먹과 멍든 눈으로 나타나는 폭력이 내일은 총과 주검으로 악화되고 있다”며 “정신질환보다 폭력 전과가 훨씬 유효한 폭력 예측 지수”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총기 사건을 막을 현실적 방안은 뭘까? 규제 강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잠재적 폭력범들에게서 총을 압수하는 법규를 마련하는 게 해답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몇몇 주에선 고위험군 개인들에게서 총기를 몰수하는 ‘한시적 시민통제(civil order)’를 허용하는 법률들을 시행 중이며, 그 효과가 증명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50개주 중 관련법을 최초로 시행한 코네티컷주에선 시민통제 20건당 총기 자살 1건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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