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6년 CES 전시장에 LG전자의 세탁기가 전시돼 있다. 라스베이거스/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22일 삼성·엘지(LG) 등 외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처) 발동을 최종 결정한 것은 한국·중국 등 아시아권 국가와의 ‘무역전쟁’에서 서막에 불과하다.
우선, 미국 상무부는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근거해 중국 등으로부터의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 증가 조사 결과를 최근 백악관에 제출했다. 수입 제품이 미국의 안보를 해치는지 조사해 이를 차단할 수 있도록 한 이 조항은 미국 산업의 피해 여부와 상관없이 발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초강력 보호무역 수단으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고서 접수 이후 90일 안에 수입 규제 조처를 취할지 결정한다. 워싱턴의 무역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르면 오는 30일 신년연설 및 기자회견 때 관련 조처를 발표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철강·알루미늄 조사 결과를 새해 들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한 것은 상징하는 바가 적지 않다. 지난해 여름부터 내부적으로 논란이 적지 않아 계속 미뤄진 이 문제가 결국 무역 강경파들의 승리로 귀결됐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강경파들은 안보 관련 제품을 외국산에 의존하면 전시에 약점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지만, 정작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군함 같은 무기 제작 단가가 올라갈 수 있다며 끈질기게 반대해왔다.
철강에 대한 미국의 무역 구제 조처가 내려질 경우 한국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보고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최근 대미 수출이 증가한 한국산 유정용강관에 대해 사실상 중국산 저가 철강의 우회 덤핑이라는 시각이 미국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태양광 패널을 겨냥했던 세이프가드 조처가 한국산에까지 불똥이 튄 것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지난해 8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무역대표부가 착수한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조사도 거의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중국의 매우 광범위한 지식재산권 침해에 대해 대규모 벌금을 물릴 예정이며, 곧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11월 의회 중간선거라는 정치 일정과 맞물려 트럼프식 보호무역주의가 최고조에 이를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세탁기, 철강, 태양광 패널 등은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 기반인 백인 노동자층, 지역적으로는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와 직결돼 있다.
또한 무역 구제 조처들은 대통령한테 권한이 상당히 위임돼 있어 의회의 협조없이도 빠르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손쉬운 정치적 수단이다. 중국의 대북한 압박 조처가 소진돼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트럼프 행정부가 ‘부담없이’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의 이번 조처에 대해 왕허쥔 중국 상무부 무역구제조사국장은 23일 담화문을 내어 “자국 사업에 대한 과도한 보호”이자 “무역 구제 남용”이라며 강력한 불만을 표시했다. 베이징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중국도 벌금엔 벌금, 관세엔 관세 식으로 미국에 무역 보복을 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고 전했다. 미-중 양쪽이 서로의 금지선을 확인할 때까지 힘겨루기를 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까닭이다.
워싱턴 베이징/이용인 김외현 특파원
yy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