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9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취임하는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왼쪽)와 허버트 맥매스터 현 국가안보보좌관.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각)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하고 후임으로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를 임명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두달여 앞두고 ‘친정 체제 구축’으로 외교 정책을 진두지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볼턴이 4월9일부터 나의 새 국가안보보좌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게 돼 기쁘다”며 “매우 뛰어나게 업무를 해왔고 항상 내 친구로 남을 맥매스터의 봉사에 매우 감사한다”고 말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두 사람 모두 추측이 계속 나오는 것보다 새 팀을 구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껴 시간표를 앞당겼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대체한 데 이어 국가안보보좌관까지 교체한 것은 ‘충성파’ 전진 배치로 북-미 정상회담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뉴욕 타임스>도 행정부 관리들 말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만남 전에 국가안보팀을 채우기를 원했다”고 했다.
볼턴은 국무부 군축·비확산담당 차관을 거쳐 유엔 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인물로,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부터 대북 강경파의 대표로 꼽혔다. 매파 이미지의 그를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임명한 것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려는 뜻도 있어 보인다.
볼턴은 2016년 트럼프 대선캠프에서 외교 정책의 핵심 조언자로 활동했다. 마이클 울프가 트럼프 행정부의 내막을 소개한 <화염과 분노>를 보면, 초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볼턴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싫어하는 “수염이 문제”가 돼 임명되지 못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최근 들어 트럼프 대통령과 종종 만나는 것이 목격되고 맥매스터 보좌관의 경질설과 맞물려 차기 안보보좌관 후보로 다시 거론돼왔다.
볼턴의 지나친 강경 성향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려를 자아내는 측면이 있다. 부시 행정부 내에서도 대표적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었던 그는 북한 등을 겨냥한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을 구체화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폭군 같은 독재자’라고 칭하는 등 외교관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지난 20일 <자유 아시아 방송>(RFA) 인터뷰에서 “미국이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제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과 평화조약을 체결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하는 것이 행운”이라며, 북한에 무조건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달 <월스트리트 저널> 기고에선 대북 선제 타격이 “완벽하게 합법적”이라고 옹호했다.
하지만 볼턴은 임명된 뒤 <폭스 뉴스>에 출연해 “그동안 개인적으로 이야기했던 것들은 이제 다 지나간 일”이라며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하는 말과 내가 그에게 하는 조언”이라고 말했다. 볼턴을 잘 아는 소식통도 “실력이 없다고 여기는 아랫사람한테는 엄격하지만 윗사람들한테는 잘하는 편”이라고 평했다.
우리 정부 반응도 비슷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교체 사유가 강경파냐 온건파냐가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 여부였다. 맥매스터와 큰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백악관 기조가 크게 바뀔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데니스 핼핀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연구원도 <한겨레>에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가 문재인 대통령 면담 뒤 정상회담 아이디어를 좋아한다”며 “볼턴이 이방카와 충돌한다면 스티브 배넌(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이나 틸러슨처럼 결국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김보협 노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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