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오른쪽 두번째)이 30일(현지시각)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유엔 주재 미국 차석대사 관저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왼쪽)과 만찬을 하면서 건배하고 있다. 왼쪽 두 번째는 앤드루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 임무 센터장이다. 미국 국무부 제공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30일(현지시각) 뉴욕 첫 일정은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고층 빌딩에서의 환영 만찬이었다.
김 부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의 만찬은 저녁 7시 맨해튼의 유엔 주재 미국 차석대사 관저에서 이뤄졌다. 이 건물은 50층이 넘는데, 국무부가 90분간의 만찬 뒤 공개한 여러 장의 사진들로 볼 때 만찬 장소 또한 꽤 높은 층임을 알 수 있다. 사진에는 폼페이오 장관이 김 부위원장에게 창밖을 가리키며 무언가를 설명하는 듯한 장면들이 있다. 배석자들을 포함한 4명이 테이블에 앉아 밝게 웃으며 건배하는 장면과, 김 부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의 서명이 들어간 메뉴판 사진도 있다. 미국 쪽 배석자로는 지난 9일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접견한 앤드루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 임무센터(KMC)장이 눈에 띠었다. 미국산 쇠고기 스테이크에 아일레이 스카치 위스키를 곁들인 식사를 마친 폼페이오 장관은 트위터에 “훌륭한 실무만찬”이었다는 글을 올리며 논의가 순조로웠음을 내비쳤다.
만찬장으로 코린티안 콘도미니엄 고층에 있는 미국 외교관 관저를 택한 것은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보여주며, 핵을 포기하면 북한에 ‘밝은 미래’가 있음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려 한 것 아니냐는 풀이가 나온다.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북한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체제 안전 보장을 기꺼이 제공하고 더 큰 경제적 번영을 누리도록 기꺼이 도와줄 것”이라며 “하지만 북한은 반드시 비핵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이 30일 만찬장에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왼쪽)에게 창밖을 가리키며 뉴욕 시내를 설명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 제공
만찬에 앞서 김 부위원장이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은 이날 오후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 일대에서는 그를 ‘철통 경호’하려는 미국 정부와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취재진 사이의 치열한 숨바꼭질이 이어졌다.
김 부위원장 일행이 탑승한 에어차이나 CA981편은 오후 1시47분께 활주로에 내렸다. 그의 모습을 담으려는 수십명의 취재진이 1층 입국장과 2층 출국장 한쪽 편의 ‘VIP 통로’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렸다. 하지만 김 부위원장 일행은 계류장에서 바로 검은색 차량을 타고 경찰 차량 호위를 받으며 공항을 빠져나갔다. 현장에 있던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관계자는 <한겨레>에 “미국 국무부 쪽과 협의해 바로 계류장에서 모시기로 했다”고 말했다.
외국 주요 인사를 계류장에서 직접 에스코트하는 것은 국가원수급에게 제공되는 ‘특급 의전’이다. 이번 회담의 중요성을 감안해 국무부가 의전에 특별히 신경 쓰고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김 부위원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실상 ‘특사’ 자격으로 방미한 것을 감안한 조처로도 해석된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30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 도착해 숙소인 호텔로 들어가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북한 대표단은 김 부위원장과 최강일 외무성 북아메리카국 국장대행 등 6명으로 구성됐다. 공항에 나온 북한대표부 관계자는 “역사적 순간”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최근 미국 정부는 유엔총회 등 다자기구 회의 참석을 제외하고 북한 인사들에게 비자를 발급하지 않았다.
김 부위원장은 숙소인 맨해튼 미드타운의 밀레니엄 힐튼 유엔플라자 호텔에 들어설 때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의 만찬을 위해 나설 때 취재진에 포착됐다. 그러나 그는 쏟아지는 질문에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미국 쪽은 호텔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취재진의 접근을 막았다. 김 부위원장 차량에는 경찰차 2대와 경호 차량 3대가 항상 붙었다.
31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 부위원장을 접견할지는 불확실하다. 백악관이 공개한 일정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종일 텍사스주에 머물며 지지자들을 만나거나 유세를 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다만 김 부위원장이 1일까지 일정을 연장하면 접견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오른쪽)이 30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 도착해 숙소인 ‘밀레니엄 힐튼 유엔플라자 호텔’로 들어가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복심’으로 꼽히는 핵심 인물로, 2000년 10월 조명록 당시 국방위 제1부위원장 겸 군총정치국장(인민군 차수)의 워싱턴 방문 이후 18년 만에 미국을 방문한 북한 최고위급 인사다. 뉴욕/AP 연합뉴스
김 부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이 만난 30일에도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 간 막판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미국 정부 당국자는 정상회담 의제에 대한 “협상이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며 “이는 두 가지 근본적 쟁점 때문”이라고 <로이터> 통신에 밝혔다. 이 관계자는 ‘비핵화에 대한 정의’와 ‘동시 행동 원칙’ 채택 여부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한은 비핵화에 대한 ‘약속만으로’ 미국이 경제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은 북한의 과감한 ‘선 비핵화’ 조처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워싱턴 소식통도 “의제에 대한 논의가 깊이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결국 현재의 교착 상태를 돌파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가 김 부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에게 주어진 셈이다.
뉴욕/이용인 특파원, 황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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