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담에 나서기 앞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조찬을 함께 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브뤼셀/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0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 도착하자마자 중국과 유럽을 향해 ‘쌍검’을 던졌다. 중국에는 2차 대규모 관세 폭탄 부과 방침을 발표하고, 유럽에는 무역적자 해소와 방위비 추가 분담을 압박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이날 성명에서 “지난 1년간 중국에 시장 개방과 불공정 관행 시정을 요구했으나 반응이 없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예고한 대로 2000억달러(약 224조원)어치의 중국산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2000억달러어치에 대한 관세는 다음달 말까지 미국 내 의견 수렴을 거친 뒤 발효할 예정이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6일 34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발효하며 1차 ‘무역전쟁’에 돌입했다. 이달 말에는 나머지 160억달러 규모 수입품에도 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모든 관세가 현실화되면 총 2500억달러어치에 대한 것으로, 중국의 지난해 전체 대미 수출액(5054억달러)의 절반에 해당한다.
이번 관세 부과는 이전과 전혀 다른 양상이다. 무역대표부가 발표한 200쪽 분량의 관세 대상 목록엔 6031개 품목이 들어 있을 정도로 광범위하다. 특히 항공·우주·로봇 등 중국의 첨단산업 육성정책인 ‘중국제조 2025’와 관련된 상품 외에도 텔레비전 부품, 개·고양이 사료, 참치, 연어, 가구 등 소비자들이 가격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품목이 적지 않다. 중국을 제압하기 위해 미국 내의 정치적 저항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또 하이브리드 자동차, 풍력 터빈, 군사 장비, 휴대전화 등 거의 모든 첨단제품 생산에 필요한 희토류도 10% 관세 대상에 올랐다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중국이 세계 희토류 생산의 8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선제공격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자국 제조업에 미치는 타격도 불사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상무부는 11일 대변인 명의의 성명에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고, 우리는 이에 대해 엄정한 항의를 표한다”며 “그동안 해온 대로 반격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상무부는 6일 미국이 중국산 제품 340억달러어치에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을 때 즉시 반격에 나선 것과 달리 구체적인 보복 조처를 밝히지 않았다.
미-중이 갈등 해소를 위해 아직 의미 있는 접촉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무역전쟁이 얼마나 지속될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치킨 게임’이 거의 막바지에 이른 만큼 한두달 안에 결국 타협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2000억달러 관세’ 조처가 공청회 등을 거쳐 효력을 발휘하기까지 두달여의 ‘협상의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쪽의 내부 정치 여건상 ‘장기전’으로 갈 것이라는 예측도 만만치 않다. 미국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고, 라이트하이저 대표,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 등 경제 국수주의자들이 대중 무역전쟁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중국도 미국에 굴복하는 자세를 보일 경우 시진핑 국가주석의 지도력이 손상될 수 있다. 워싱턴의 무역 관련 소식통은 “단기적으로 타협이 되더라도 패권을 둘러싼 갈등과 전략적 불신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2차 관세 부과 방침은 트럼프 대통령의 브뤼셀 도착에 맞춰 발표됐다는 점에서 유럽연합(EU)의 자동차 수출 등 대미 무역흑자를 겨냥한 측면이 있다. 미국 상무부는 이미 수입 자동차 관세 부과를 위해 조사를 시작했다. 유럽연합이 주요 타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 당국자들을 인용해 “이번 대중국 관세 조처는 미국이 무역전쟁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유럽에 주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나토 정상회의는 안보에 초점이 모아지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의를 통해 유럽에 더 많은 국방비를 부담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넘어 무역적자 해소를 압박하는 장으로 활용할 전망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유럽연합은 우리 농부, 노동자, 기업들이 유럽에서 사업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미국은 151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안고 있다)”며 “그러면서 그들은 우리가 나토를 통해 자신들을 기꺼이 방어하고 친절하게 돈을 내기를 원한다. 이건 안 된다”고 압박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공세가 더욱 거칠어질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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