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외계행성 탐사의 첨병 역할을 해온 케플러 망원경의 일러스트레이션. 미국 항공우주국(NASA) 누리집 갈무리.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
미국의 문제적 군인 맥아더 장군이 남겼다는 명언이다. 인류의 외계행성 탐사에 최첨병 역할을 톡톡히 해온 천체망원경 케플러에게 지금 딱 들어맞는 말이기도 하다. 31일(현지시각)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연료가 바닥난 케플러 망원경의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나사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지난 9년 동안 수십억개의 행성으로 가득찬 깊은 우주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해온 케플러 망원경이 임무를 지속하기 위한 연료가 떨어졌다”며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현재의 안전한 궤도에서 퇴역하도록 결정했다”고 밝혔다. 기능을 다한 케플러에 모든 장치를 끄라는 명령을 전달하고, 동체를 회수하지 않은 채 방치하는 ‘우주장’을 치르겠다는 뜻이다. 케플러는 지구를 뒤따라 태양 주위를 돌고 있으며, 공전 주기는 372.5일이다. 나사는 “케플러 망원경이 태양계 바깥의 외계행성을 2600개가 넘게 발견하는 전설을 남겼으며, 그 중 상당수는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라고 덧붙였다.
2009년 3월 발사된 케플러 천체망원경은 외계 우주 관측에 최적화되고 별의 밝기를 측정할 수 있는 첨단 대형 디지털 카메라를 장착했다. 나사는 “케플러가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행성들의 다양성을 보는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며 “케플러가 발견한 데이터들 중 가장 최근의 분석에 따르면, 밤하늘에 보이는 별(항성)들의 20~50%가 지구와 비슷한 크기의 바위 투성이 행성들을 생명체 존재의 필수 조건인 물이 있을 수 있는 ‘생존 구역’의 거리에 거느리고 있다는 결론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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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는 케플러의 외계행성 탐사가 160㎞ 밖의 자동차 전조등 앞을 기어가는 벼룩을 찾아내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케플러 프로젝트 개발에 참여했던 나사 제트추진연구소의 레슬리 리버시 천체물리학국장은 “케플러 미션은 매우 혁신적인 설계에 기반했다”며 “결정적인 난관들도 많았지만 케플러 프로젝트의 과학자와 엔지니어팀은 뛰어난 재능으로 그것들을 극복해왔다”고 감회를 밝혔다.
케플러는 2012년 설계수명을 넘겨서도 임무를 부여 받았지만, 이듬해 우주망원경의 자세를 제어하는 자이로스코프(회전의)가 고장 나 한동안 임무 수행에 차질을 빚다가 태양광을 이용해 극적으로 회생했다. 2014년부터 ‘K2'라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아 지금까지 19차례나 외계행성 탐사 임무를 수행해 왔다. 케플러는 그러나 최근 들어 동면 상태에 들어가면서 과학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케플러는 애초 6년치 연료를 싣고 발사됐으나 지금까지 9년이나 버텨왔다. 나사는 2주 전 케플러의 연료가 바닥을 드러낸 것으로 판단하고 관측자료를 회수하는 등 이별 준비를 해왔다.
나사의 케플러 프로젝트 과학자인 제시 도스턴은 “케플러의 퇴역이 케플러 관측의 종말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며 “지금까지 수집한 데이터들의 분석으로 나올 다양한 발견들, 그리고 케플러의 성과 위에 세워질 미래의 탐사를 생각하면 흥분된다”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