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24일(현지시각) 의사당에서 의원들과의 비공개 회동 뒤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펠로시 하원의장은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들은 헌법에 심각하게 위배된다”며 “나는 오늘 하원에서 공식적인 탄핵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선언한다”고 밝혔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민주당에 탄핵 추진의 빌미를 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지난 7월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가 발단이 됐다. 이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아들 헌터 바이든이 연관된 사건을 수사하라고 압박했다고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수사하지 않으면, 미 의회가 승인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2억5천만달러 군사원조를 철회할 것이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대선 맞수’로 꼽히는 바이든 전 부통령의 약점을 캐기 위해 외국정부에 뒷조사를 부탁하고 ‘협박’까지 했다는 얘기다.
이런 사실이 <워싱턴 포스트> 등의 보도로 폭로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바이든에 대해 언급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잘못된 것이 없다’며 오히려 역공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트위터에서 “가짜 뉴스 미디어와 그들의 파트너 민주당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바이든의 아들을 수사한 검사를 해임하지 않으면 미국 돈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바이든의 요구에서 가능한 멀어지려고 나에 대한 얘기를 조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바이든의 아들 헌터는 우크라이나의 정경유착 재벌인 미콜라 즐로체프스키의 에너지 회사 ‘부리스마 홀딩스’에 2014년 이사로 고용돼, 매달 5만달러를 받고 일했다. 바이든은 부통령 때인 2016년 초 부리스마를 수사하는 검찰총장 빅토르 쇼킨을 해임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10억달러의 대출 보증을 철회하겠다고 압력을 넣었다고 트럼프 대통령 쪽은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쪽은 바이든이 2018년 외교관계위원회(CFR) 주최 모임에서 “그 검찰총장이 해임되지 않으면 당신들은 돈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한 동영상도 퍼트렸다. 실제 쇼킨 검찰총장은 곧바로 의회에 의해 해임됐다.
바이든의 아들 문제는 올해 초에도 언론에서 거론됐으나 바이든이 개입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았으며, 헌터 자신도 성명을 내고 아버지와 부리스마 문제를 논의한 적은 없다고 부인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바이든이 우크라이나 검찰총장 해임을 요구한 것은 돈세탁과 지위남용을 한 즐로체프스키 등에 대한 범죄수사를 우크라이나에게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명도 나온다. 쇼킨이 오히려 즐로체프스키에게 뇌물을 요구하며, 우크라이나의 정경유착 범죄에 대해 눈을 감고 있었다는 것이다. 영국 등 다른 정부도 비슷한 이유로 쇼킨 해임을 요구했다.
하지만, 헌터 바이든은 이해관계 상충의 여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헌터는 우크라이나에서 사업한 경험도 없었고, 아버지의 지역구인 델라웨어에서 주정부 허가를 요구하는 업체의 로비를 하기도 했다.
쇼킨의 후임자 유리 루트센코 전 검찰총장은 부리스마에 대한 수사를 강경하게 펼쳤으나, 부리스마는 우크라이나에서 사업을 철수하며 수사에서 벗어났다. 루트센코는 올해 들어 이 수사를 재개했고, 이 과정에서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 루돌프 줄리아니와 접촉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신정부는 지난달 루트센코를 교체했다. 트럼프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는 이 과정에서 있었다. 트럼프는 젤렌스키에게 이 문제를 줄리아니와 상의하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 통화가 있은 뒤 2주 뒤에 내부고발이 있었다. 정보당국의 감사관은 조지프 매과이어 국가정보국(DNI) 국장대행에게 ‘긴급’ 사안이라고 통지했다. 하지만, 매과이어는 이를 긴급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의회에 통보하지 않았다. 그러자 감사관 쪽은 의회에 그 내부고발이 있었음을 알려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본격화됐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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