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시민들이 26일 수도 산티아고에서 마뿌체족 깃발을 흔들며 빈부 격차와 불평등 심화를 불러온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의 경제청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산티아고/로이터 연합뉴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100만명 넘는 사람들이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의 퇴진과 경제개혁을 요구하며 25일 거리로 나섰다. 피녜라 대통령은 비상사태 해제와 대폭의 개각 등 유화책을 잇달아 내놓으며 상황 진정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으로 촉발된 대규모 시위가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시민들은 이날 시내 명소인 바케다노 광장 등으로 몰려나와 ‘저항의 노래’를 부르며 임금 인상과 연금, 교육 개혁 등을 요구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일부 시민은 보수 성향의 억만장자 출신인 피녜라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산티아고 시민 670만여명 가운데 100만명이나 시위에 나선 것은 빈부 격차와 불평등 심화를 불러온 현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이 임계치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피녜라 대통령이 시위 하루 전인 24일 △전기요금 9.2% 인상안 철회 △기초연금 20% 인상 등을 발표했지만 분노한 민심을 달래지는 못했다. 외신들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대통령 시절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라고 평가했다. 다만, 지금까지 폭동 양상으로 번졌던 것과 달리, 이날 시위는 비교적 평화로운 행진으로 마무리됐다. 일주일 넘게 이어진 시위 과정에서 지금까지 최소한 17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 규모에 놀란 칠레 정부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피녜라 대통령은 시위 이튿날인 26일 대폭적인 개각을 하겠다며 모든 각료에게 사직서 제출을 요구했다고 선언했다. 또 그는 상황이 허락하면 27일 밤 비상사태를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자체 입수한 문건을 인용해 피녜라 대통령이 내무·국방·경제·교통·환경부를 포함한 최소 9개 부처의 장관을 경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다음달 중순 칠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피녜라 대통령은 상황을 조기에 매듭지어야 하는 처지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