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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전례 없는 ‘삼중 위기’에 트럼프 지도력 실종…혼돈의 미국

등록 2020-06-01 17:32수정 2020-06-01 21:14

코로나19와 경기침체에 전국적 시위까지
스페인독감·대공황·1968년 인종폭동 3대위기 겹친 셈
삼중위기에 지도력 실종 겹쳐 사중 위기로 악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0일(현지시각) 플로리다주 케이프 내버럴에 위치한 미우주항공국(NASA)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엑스가 만든 최초의 민간 유인우주선 ‘크루 드래건’의 발사 장면을 지켜본 뒤 열린 행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케이프 커내버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0일(현지시각) 플로리다주 케이프 내버럴에 위치한 미우주항공국(NASA)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엑스가 만든 최초의 민간 유인우주선 ‘크루 드래건’의 발사 장면을 지켜본 뒤 열린 행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케이프 커내버럴/AP 연합뉴스

미국이 전례없는 ‘삼중 위기’로 빨려들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보건위기, 이로 인한 경제위기에 인종 갈등으로 촉발된 폭동으로 인한 사회위기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1918년 스페인 독감, 1930년대 대공황, 1968년 인종폭동 등 20세기 이후 미국을 강타했던 세 가지 위기가 동시에 몰려들고 있는 셈인데, 삼중 위기에 대처할 지도력마저 실종돼 ‘사중 위기’로 심화되고 있다.

첫째, 미국은 현재 1918년 스페인 독감에 준하는 보건위기를 맞고 있다. 스페인 독감 당시 미국은 당시 1억500만 인구 중 28%가 감염돼, 50만~85만명이 사망했다. 현재 코로나19로 미국은 183만명이 감염돼, 10만8천명이 사망했다. 5월31일 신규 확진자 수가 2만350명이다. 두 달째 매일 확진자가 2만명을 넘으며 여전히 확산되고 있는 모양새다.

둘째, 1930년 대공황에 버금가는 경제위기다. 코로나19 만연에 따른 사회·경제활동 중단으로 지난 10주 동안 신규 실업자가 4천만명이나 발생했다. 4월 기준 전체 노동력 약 1억5648만명의 약 4분의 1이다. 4월 실업률은 지난 3월보다 4.4%포인트가 오른 14.7%이다.

이 실업 수치는 실업수당을 신청한 이들을 토대로 작성한 것이다. <포브스>는 통계에 잡히지 않거나, 곧 실직 위기에 처하거나 정규직을 찾으려는 임시직 등 한계 상황에 몰린 노동자들을 합친 ‘조정 실업률’은 27.6%에 이를 것이라고 진단했다. 1930년대 대공황 때 최대 실업률은 1933년 24.9%이다. 현재의 경제위기가 대공황 때 상황과 다름없다는 뜻이다.

셋째, 1968년 베트남전과 인종갈등으로 촉발된 사회 소요 위기이다. 지난 25일 경찰의 연행 과정에서 목이 짓눌려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적어도 미국 전역 140개 도시에서 시위와 폭동이 일어났다. 주요 도시에서 주방위군이 투입되고 통금이 실시됐다. 1968년 마틴 루서 킹 목사 암살로 촉발된 인종폭동 사태 이후 최악이다. 코로나19와 경제위기로 쌓인 불만이 이 사건을 계기로 인종갈등으로 폭발한 것이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31일(현지시각) 열린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에 대한 항의 시위 도중 성난 시위대가 성조기를 불태우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31일(현지시각) 열린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에 대한 항의 시위 도중 성난 시위대가 성조기를 불태우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특히 29일 밤에는 백악관마저 폭력적인 시위에 노출됐다. 백악으로 이어지는 재무부를 막는 바리케이드가 뚫렸고, 대통령 경호인력인 비밀수사국까지 출동해 시위대를 직접 봉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막내 아들 배런이 백악관 내 비밀 ‘지하벙커’인 대통령비상작전센터에 1시간 가량 머물렀다고 <시엔엔>(CNN)이 보도했다. 9·11테러 때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이 은거했던 곳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댄 볼즈는 1일 “미국은 이런 종류의 혼란들을 동시에 겪은 적이 없다”고 개탄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삼중 위기 앞에서 미국의 지도력이 실종됐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일축하면서 미국을 세계 최대 확진국으로 만들고, 그로 인해 대공황에 준하는 경제위기를 야기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했다.

이번 플로이드 사건에서도 트럼프는 특유의 책임전가와 분열적 언사로 기름을 부었다. 그는 일련의 트위터 메시지들을 통해 △플로이드 사건이 발생한 미니애폴리스의 민주당 시장을 공격하고 △안티파(극좌파) 운동을 테러단체로 지정한다고 발표하고 △언론이 증오와 무정부를 퍼뜨린다고 비난하고 △자신이 주방위군을 출동한 것을 자찬하며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를 조롱했다.

그는 “민주당 시장과 주지사들은 강경해져라. 그 사람들은 무정부주의자들이다. 지금 우리 주방위군을 불러라. 세계가 지켜보고 있고, 당신 ‘졸린 조’를 비웃고 있다. 이게 미국이 원하는 것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티파 운동은 실정법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명확한 조직을 갖춘 단체가 아닌데도, 외국 단체에 적용하는 테러지정법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국가적 삼중 위기 속에서도 희생양을 찾아 지지층을 결집하는 평소의 화법을 앞세웠다. 그의 일부 백악관 및 선거운동 참모들은 31일 이번 사태에서 미국 국민들을 위무하는 공식적인 연설을 해야한다고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지난 3월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한 집무실 연설이 역효과만을 불렀다는 이유로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은 트럼프의 대통령 재직 1227일 동안 오늘처럼 지도력을 간절히 간구했지만, 트럼프는 그런 것을 제시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비난을 넘어선 체념을 드러냈다.

애틀랜타 시장인 케이샤 랜스 보텀스는 1일 <시엔엔>과의 회견에서 “그는 당장 입을 닥쳐야 한다. 이번 사태는 미국 전역에서 샬러츠빌 사태가 재연된 것”이라며 “그가 말하면, 사태를 악화시킨다. 그가 당장 침묵하기를 바란다”고 말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트럼프는 2017년 8월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일어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유혈 폭력 사태에서 그들에 맞선 시위대를 양비론으로 비판했다가 거센 비판에 직면했었다.

플로이드 사건으로 촉발된 전국적인 소요사태는 미국의 위기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거리로 나선 인파들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종, 이에 따른 코로나19 감염 확산은 경제적 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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