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무장대원들이 22일(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인근 도시에서 순찰을 돌고 있다. UPI 연합뉴스
탈레반이 본격적으로 신정부 구성 및 저항세력 대처에 나섰다. 탈레반 쪽은 포용적인 신정부를 구성하고 국제사회와 협력하겠다는 유화적인 태도를 거듭 표방하면서도, 판지시르 계곡에 은거한 저항세력에 대한 압박을 높이고 있다.
탈레반 창립자 중의 하나로 2인자인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21일 카불에 들어와 신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알자지라>가 22일 보도했다. 지난 17일 카타르에서 칸다하르로 귀국한 그는 이날부터 카불에 들어와 탈레반 사령관, 전 정부 지도자들, 성직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탈레반 관계자는 ‘2인자’인 바라다르가 2주 안에 차기 정부 체제와 관련한 결정을 발표할 것이라고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에 말했다. 바라다르는 카타르에서 진행된 미국과의 평화협상을 주도하고, 미군 철수를 이끌어낸 도하협정을 타결한 인물로, 탈레반 내에서 대외협상과 정치 분야 지도자다.
탈레반이 표방하는 “포용적인 신정부” 구성에서 하미드 카르자이 전 아프간 대통령이 핵심적인 중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카르자이는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한 직후부터 접촉을 시작해, 국외로 달아난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의 공백을 채우고 있다. 그는 아프간 정부의 평화협상 대표인 압둘라 압둘라와 공조하면서, 탈레반 내 하카니 네트워크의 지도다인 칼릴 하카니 등과 만났다.
탈레반 문화분야위원회의 부대표인 아흐마둘라 와세크는 지난 21일 “우리는 모든 아프간 인들이 수용할 수 있는 포용적인 정부를 구성하려고 다른 쪽들과 대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탈레반은 북부 판지시르 계곡을 중심으로 은거한 반탈레반 세력에 대한 압박의 강도도 높이고 있다. 탈레반은 아랍어 트위터 계정을 통해 “주 정부 관리들이 판지시르를 평화적으로 이양하는 것을 거부한 뒤” 수백명의 무장대원들을 그곳으로 파견했다고 밝혔다. 판지시르의 반탈레반 세력에 합류한 암물라 살레 전 부통령도 탈레반이 “판지시르 입구에 병력을 집결시켰다”고 인정했다.
탈레반은 22일 판지시르의 저항세력인 ‘아프가니스탄국가저항전선’의 지도자 아마드 마수드에게 항복하라며 4시간의 시간을 줬다고 <스푸트니크>가 보도했다. 이에 마수드는 투항을 거부하고, 평화적인 해결책과 포용적인 정부 구성을 협상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탈레반은 저항세력들의 이런 제의를 거부했고, 현지에 파견된 탈레반 무장대원들은 공격 명령을 대기하고 있다고 통신은 보도했다.
탈레반의 한 대변인은 <알하다스> 방송과의 회견에서 “우리의 목적은 나라를 통일시키는 것이다. 다른 정권은 있을 수 없다”며 “상호 이해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마지막 해결은 전쟁”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탈레반은 저항세력과의 협상도 시사하고 있다. 탈레반 대표단은 카불 주재 러시아대사관도 방문해 북부 지역에서 버티는 지도자들에게 협상 제의를 건넸다고 드미트리 지리노프 대사가 러시아 텔레비전에 밝혔다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아프간 북부의 세력들에게 영향력을 가진 러시아에게 중재를 부탁한 것이다.
미국도 탈레반의 자세 변화를 조건으로 협력 의사를 밝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탈레반은 근본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며 탈레반이 효과적인 통치를 원한다면 미국 등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탈레반이 카불 공항에 대한 접근을 대체적으로 보장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주요 7개국(G7) 정상은 24일 아프간 사태를 논의하는 긴급 화상회의를 연다. G7 의장국인 영국은 탈레반에 대한 제재와 지원 중단 검토를 제안할 방침이지만, 이번 회의에서 통과될 지는 불투명하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한편, 아프간 내 외국 시민 등의 소개가 지체되면서 미군의 철군 시한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오는 31일까지 아프간에서 모든 미군 병력을 철수한다는 시한을 연장할 수 있다고 22일 밝혔다. 그는 “우리의 희망은 우리가 (철군 시한을) 연장하지 않는 것이지만, 우리의 소개 작전 과정이 얼마나 길어질이에 대해 논의가 있을 것”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미국이 철군 시한을 연장하지 않으면 자국민의 소개가 불가능해진다며 미국에 철군 시한 연장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탈레반은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수하일 샤힌 대변인은 영국 <스카이 뉴스>와 인터뷰에서 철군 시한은 “레드라인”이라며 “미국이나 영국이 계속해서 대피를 위한 추가 시간을 원한다면 대답은 ‘아니오'”라고 말했다. 그는 “(시한을 지키지 않는 데 따른) 결과가 따를 것”이라며 “우리 사이에 불신을 만들 것이고, 그들이 주둔을 계속한다면 반발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