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대원이 31일 미군 철수 뒤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있는 군용기 앞을 걷고 있다. 카불/로이터 연합뉴스
미군의 아프간 철수 당시 탈레반이 미군과의 비공개 협약에 따라 미국인들을 카불공항의 ‘비밀 게이트’로 인도했다고 <시엔엔>(CNN)이 31일 보도했다.
익명의 미국 국무부 관리 2명을 인용한 보도를 보면, 미군 특수작전팀은 카불공항에 ‘비밀 게이트’를 만들고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려는 미국인을 안내할 ‘콜센터’를 설치했다. 이에 따라 미국인들은 미리 설치된 공항 근처의 ‘소집 장소’로 모이도록 안내받았고, 그곳에서 탈레반은 모인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미군이 운용하는 비밀 게이트로 데리고 왔다.
미군들은 탈레반이 공항에 몰려든 아프간 사람들의 인파를 뚫고 이들을 데려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언제든 상황이 발생하면 개입할 태세를 갖췄다.
미군이 이런 비밀작전에 나선 것은 탈레반의 진군 이후 아프간을 떠나려는 아프간 사람들이 한꺼번에 카불공항으로 몰려들어 미국인들의 공항 진입이 어려워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실은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 등의 테러 우려 때문에 미군의 아프간 철수 작전이 완료될 때까지 비밀로 유지됐다.
탈레반의 이런 ‘에스코트’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이뤄졌고, 미국인들은 소집장소에 대해 여러 메시지로 안내를 받았다. 주요 소집장소 중 하나는 공항 바로 바깥에 있는 아프간 내무부 건물이었다. 이 작전에 관여한 미군 관계자는 이에 대해 “매우 잘 작동했다”고 말했다.
미국 여권을 갖고 있던 미국인이 공항 근처의 탈레반 검문소에서 제지되고 심지어 일부 구타당한 사례도 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방송은 신원 확인을 하던 탈레반이 미국인을 공항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사례가 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밝혔다.
또 미군 특수작전팀은 아프간 거주 미국인들이 콜센터로 접촉하도록 해 이들의 공항 접근을 도왔다. 이들은 콜센터를 통해 미국인과 직접 통화하면서 정확하게 어디로 걸어오면 비밀 게이트를 발견할 수 있는지 알려줬다.
미군과 탈레반의 이런 협조는 그동안 여러 해 동안 정치협상을 하며 마련된 군사·외교적 창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양자 간 이런 정도의 비공개 협약은 전례 없는 수준의 전술적 협력이라고 방송은 풀이했다.
지난 7월 이후 미국이 아프간 철수 작전을 완료한 지난 8월 30일까지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모두 12만2천여명이 아프간을 떠났으며, 여기에는 미국 민간인도 6천여명에 이른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