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 지도자인 무크타드 알사드르의 지지자들이 29일 그의 은퇴 발표 뒤 바그다드의 총리 집무실인 공화궁을 난입해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 연합뉴스
이라크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아파 지도자가 돌연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 시위가 발생해 최소 15명이 숨졌다. 이라크 정국 위기가 커지고 있다.
이라크의 최대 정파인 알사이룬(사드르주의자운동)을 이끄는 시아파 지도자 무크타다 알사드르(48)가 29일 정계 은퇴를 발표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그는 이날 성명에서 “나는 정치 문제에 대해 간섭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나의 최종적인 은퇴와 모든 (사드르주의자) 기관들의 폐쇄를 발표한다”고 말했다. 그의 은퇴 발표 뒤 이라크의 국영통신 <이나>(INA)는 사드르가 폭력과 무기 사용이 종식될 때까지 단식투쟁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사드르는 지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뒤 미군 그리고 이라크 임시정부와 싸운 가장 강력한 시아파 민병대인 ‘메흐디군’을 창설하고 이끌었다. 메흐디군은 2008년 이라크 정부와 휴전협정을 체결했다. 2014년에는 평화여단으로 개명했으며, 현재 이라크 정부군을 구성하는 가장 강력한 민병대로 남아있다.
사드르는 또 의회 내 시아파 최대 정파인 알사이룬의 지도자이다. 알사이룬은 지난 10월 총선에서 전체 329석 중 73석을 차지해 최대 정파가 됐다. 그 이후 이라크에서는 알사이룬과 경쟁 정파들 사이의 다툼으로 정부가 구성되지 못하고 있다. 알사이룬 소속 의원들은 지난 6월 전원이 사임을 발표하며, 경쟁 정파인 친이란 연합세력인 ‘공조 체제’의 모하메드 시아 알수다니의 총리 지명을 반대했다. 정부 구성이 미뤄지면서, 사드르 지지 세력들이 정부 청사들이 모여있는 바그다드의 보안구역인 ‘그린존’으로 들어와 의회까지 점령하며 농성하는 등 내란 위기까지 고조됐다.
사드르의 은퇴 발표 뒤 이날 지지자들은 총리 집무실이 있는 공화궁으로 난입해 사드르 지지자와 친이란 정파 추종자들 사이에 무력 충돌이 벌어졌다. 그린존에서 벌어진 이 충돌로 최소 15명이 숨졌다고 <아에프페>가 의료 관계자들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또한, 350여명이 다쳤고 일부는 총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이라크 군 당국은 이날 오후 7시를 기해 전국적인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이틀 전에 사드르는 지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정치를 해온 모든 정당과 정치인들의 퇴출을 주장했었다. 그의 은퇴 발표는 미국 침공 뒤 책임 있는 정치인들의 은퇴를 명분으로 삼았으나 정적 퇴출을 위한 권력투쟁으로 보인다.
그가 이끄는 메흐디군은 이란과 연계가 있으나, 사드르는 이란과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독자 노선을 추구해왔다. 그는 자신을 이라크에서 미국과 이란의 영향력을 일소하려는 민족주의자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10월 총선 이후 정국 교착 상태로 고조되는 내전의 위기는 그의 은퇴 선언으로 더욱 첨예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수백만 명의 추종자를 가진 그는 수십만명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해왔다. 그의 지지자들은 지난 6월 이후 수차례나 의회를 난입해 점령하는 등 정국을 마비시키는 동원력을 보여줬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