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16일 서울에서 열린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아시아선수권대회에 히잡을 쓰지 않고 출전한 이란 선수 엘나즈 레카비의 경기 모습. 국제스포츠클라이맹연맹 제공. AFP 연합뉴스
서울에서 열린 국제 암벽등반대회에서 히잡을 쓰지 않고 경기했던 이란 선수 엘나즈 레카비(33)의 집이 철거당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 <시엔엔>(CNN)은 3일(현지시각) <이란 와이어>란 이란 매체를 인용해 이란 북서부 잔잔주에 있는 레카비 가족의 집이 무너졌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가 제공한 동영상을 보면, 집이 무너져 있고 주변에 각종 메달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그 옆에선 레카비의 오빠 다부드 레카비(35)가 울부짖고 있다. 다부드 역시 스포츠클라이밍 선수로 여러 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다.
동영상을 찍고 있는 이는 “이게 이 나라에서 산 결과다. 나라를 위해 메달을 몇 개씩 딴 이 나라의 챔피언에게 일어난 일”이라며 “열심히 노력해서 국가의 이름을 드높였는데, 그에게 후추가루를 뿌리고 39㎡의 집을 부수고 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레카비는 이란에서 이른바 ‘히잡 시위’가 한창 번져나가던 지난 10월 서울 스포츠클라이밍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히잡을 쓰지 않고 경기에 나서 주목을 받았다. 일부에선 레카비가 히잡 시위에 대한 지지의 뜻을 밝힌 것이라며 반겼지만, 레카비는 이란에 도착한 뒤 “의도하지 않은 실수”라며 사과했다. <시엔엔>은 레카비 가족의 집이 언제·왜·누가 철거했는지 원인과 경위가 분명하지 않다고 전했다. 이란 당국은 이 사건과 관련해 공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란 와이어>는 소식통을 인용해 이란 경찰이 집을 철거했으며, 오빠 다부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규정 위반’으로 벌금 5천달러(650만원)을 부과받았다고 보도했다. 또 다부드가 소셜미디어에 파괴된 정원 사진을 올려놓고 “정의는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 글귀를 남겼다고 전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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