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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튀르키예 지진’ 사망 2만8천명 넘어…에르도안 “세기의 재앙”

등록 2023-02-12 13:10수정 2023-02-13 14:39

11일(현지시각) 터키 마라스에서 부인이 남편에 기대 앉아 다른 가족들의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마라스/로이터 연합뉴스
11일(현지시각) 터키 마라스에서 부인이 남편에 기대 앉아 다른 가족들의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마라스/로이터 연합뉴스

이브라힘 자카리아(23)는 지난 6일(현지시각) 새벽 규모 7.8 강진으로 집이 무너지면서 건물 더미에 갇혀 있던 닷새 동안 시간의 흐름도 잊고 정신 혼미해져 있었다. 시리아 서북 해안 도시 자블라에서 휴대전화 가게 점원으로 일하는 그는 그래도 거의 본능적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 사이로 한두 방울 떨어지는 더러운 물을 받아 마시며 살아남았다. “이제 죽는구나”라고 희망을 접으려 했을 때인 10일 밤 구조대의 손길이 건물 잔해를 헤치고 내려왔다.

튀르키예·시리아의 지진 희생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닷새 만인 11일(현지시각) 사망자가 2만8000명을 넘어섰다. 튀르키예 정부는 이날 튀르키예 지역에서만 2만4617명이 숨지고 8만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고 <에이피>(AP)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시리아 지역에서도 사망자가 적어도 3553명을 넘어섰다. 시리아 정부는 며칠 전 1387명이 숨졌다는 발표를 끝으로 희생자 집계를 더는 내놓고 있지 않지만, 북서부의 반군 점령지에서는 사망자가 2166명에 이르렀다고 ‘화이트 헬멧’이라고 불리는 구조단체 시리안민간방위대(SDC)가 밝혔다.

사망자 숫자는 급속히 늘어나고 있지만, 기적 같은 생존자 구출 소식도 종종 들려온다. 튀르키예 카라만마라슈에서는 12살 소년 네히르 나즈 나를리가 건물더미에서 구조돼 가족에 넘겨졌으며, 엘비스탄에서는 20살 엘리사 울크와 몇 사람이 132시간 만에 구조의 손길을 받았다. 가지안테프주 누르다기에서는 일가족 다섯명이 한꺼번에 구조됐고 이슬라헤에서는 한 남자가 세 살 먹은 딸과 함께 구조됐고 하타이에서는 7살 소녀가 구조됐다.

하타이주 이스켄데른에서는 44살 남자가 138시간 만에 구조됐으며, 안타키아에서는 140시간 만에 함자라는 소년이 구조됐다. 구조대 관계자는 더는 생존자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건물 더미를 헤치고 들어갔는데 생존자를 발견했다며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안타까운 소식도 잇따랐다. 50시간 넘는 구조작업 끝에 병원으로 옮겨진 제이네프 카라만은 입원 치료 중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숨졌다. 그를 구해낸 구조팀 관계자는 “그래도 가족들이 작별 인사를 하고 한번 더 보고 서로 어루만질 수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지진 피해지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번 지진을 가리켜 “세기의 재앙”이라고 말했다. 앞서 그는 지진으로 도로와 다른 사회기반시설이 파괴되어 초기 대응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사실상 대응 실패를 인정했다. 그는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이 진앙에서 반지름 500㎞ 안쪽 지역이며 여기에는 튀르키예에만 1350만명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지진 피해가 워낙 넓은 지역에 걸쳐 있어 구조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다.

지진 피해 지역 곳곳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은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기약없는 구조만 기다리고 있다. 안타키야에 사는 블렌트 시프시플리는 “아직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건물 더미에 갇혀 있는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른다”며 “그런데 구조대원들은 또 다른 곳의 구조 호출을 받고 가버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시리아 난민 출신 아지 알 알리는 “어머니와 두 언니의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만 며칠째 아무도 안 온다”며 “지금은 가족들이 묻혔을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 가서 이름을 부르는 것뿐인데 아직 아무 대답도 없다”고 절망했다.

안타키야 외곽에는 거대한 집단 묘지가 조성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굴착기와 불도저가 구덩이를 파고 있으며, 다른 쪽에서는 검은 시체 운반용 자루를 실은 트럭과 구급차가 드나들고 있다. 채 1m도 안 되는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 몇백기의 묘 앞에는 각각 덩그러니 나무 묘비가 세워져 있다. 관련 당국자는 묘지가 문을 연 첫날인 10일 시신 800구가 들어왔고 이튿날 정오까지 모두 2000구가 묻혔다고 말했다.

12년 내전으로 이미 피폐한 상태에서 지진 피해가 가중된 시리아는 국제사회의 구조마저 더뎌 어려움이 더 크다. 유엔은 지난 10일 처음으로 구호물자가 튀르키예에서 국경을 넘어 시리아 북서부 지역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유엔은 시리아에서만 530만명이 집을 잃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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