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한겨레 자료 사진
터키가 수십대의 탱크와 장갑차를 시리아로 들여보내 ‘조상의 묘’를 파헤쳐 옮겼다. 이슬람국가(IS)의 위협으로부터 묘를 보호하기 위한 조처라고 하지만 속내는 전혀 딴판이다.
터키는 21일 시리아 북부의 코바니를 통해 탱크 39대와 장갑차 57대, 병력 572명을 국경에서 35㎞쯤 떨어진 ‘술레이만 샤’ 묘지로 보내 22일 오전 유물을 실어 터키 국경 근처로 이장하고, 묘지를 지키던 병력 38명을 철수시켰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아흐메트 다우토을루 터키 총리는 “우리의 정신적 가치를 수호하고 군인들의 안전을 확보하라고 군대에 지시했다”며 “묘역이 이슬람국가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묘역을 파괴했다”고 말했다.
술레이만 샤(1178~1236 추정)는 오스만튀르크 제국을 세운 오스만1세의 할아버지로, 축구장 크기만한 그의 묘는 시리아 알레포 주의 유프라테스강 모래톱에 자리잡고 있었다. 시리아에 있지만 1921년 체결된 앙카라 조약에 따라 터키 영토로 인정받았다. 투르크족의 부족장이었던 술레이만 샤는 부족의 거처를 찾다가 유프라테스강에 빠져 숨졌으며, 익사한 곳에 애초 묘가 있었다. 1974년 타우라댐이 건설돼 아사드 호수가 생기면서 묘가 수몰 위기에 놓이자 80㎞ 쯤 북쪽으로 이장됐다. 터키는 40명 안팎의 병력을 교대로 보내 이곳을 지켜 왔다.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후신인 터키는 묘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군사작전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2년 8월 “(묘지에 대한 공격은) 터키뿐만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영토에 대한 공격”이라고 엄포를 놨었다. 또 지난해 터키 의회는 묘지를 지키는 병력이 몇달간 이슬람국가에 포위됐다는 보도가 나오자 무력 사용을 승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터키가 술레이만 샤의 묘를 이장한 데는 현실 정치적 맥락이 더 크게 작용했다. 터키는 미적대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이슬람국가 격퇴 작전에 완전히 발을 담그기를 꺼려왔다. 터키가 이슬람국가의 성장을 방조했다는 분석도 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술레이만 샤의 묘지가 공격을 받았다면 터키 여론이 악화해 이슬람국가에 대한 전면적 군사작전을 회피하는 정부를 곤경에 빠뜨렸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터키 정부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묘지를 옮겼다는 것이다.
황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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