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수도 도하의 한 대형빌딩 건설 현장의 대형 조감도 앞에서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앉아 쉬고 있다. 위키피디아
지난 6월, 중동의 산유 부국 카타르의 대도시 라이얀에서 24살의 건강한 남성이 비좁고 불결한 숙소의 간이침대에서 잠자던 중 갑자기 숨을 거뒀다. 멀리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였다. 동료들은 “그가 마치 목을 졸린 것처럼 두어 번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의식을 잃었다”며 “그가 숨지자 주변은 두려움과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말했다.
카타르에서 매년 수백명의 이주노동자가 돌연사로 목숨을 잃고 있는데도 카타르 정부는 예방책은커녕 정확한 원인 조사마저 뒷짐을 지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7일 보도했다. 사망자 대다수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주 경기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아시아 국가 출신이다. 카타르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이들의 직접 사인은 심장 질환이 가장 많은데, 상당수가 수면 중 갑자기 사망해 현지에선 ‘돌연사 증후군’이란 말까지 나왔다.
네팔 정부의 집계에 따르면, 2012~2017년 사이 최소 1025명의 자국 노동자가 카타르에서 사망했다. 사고나 자살, 범죄를 뺀 사망 사건의 주요 원인은 심장마비와 호흡기 질환이었다. 인도 정부도 2012~2018년 카타르에서 자국 노동자 1678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했다. 일주일에 4.6명꼴이다. 그 대다수인 1345명은 ‘자연적 원인’으로 숨졌다고 한다.
젊고 건장한 남성들이 무더기로 숨지는 이유는 폭염에 따른 ‘온열 질환’으로 추정된다. 카타르에선 여름철 최고 기온이 45℃까지 치솟는 불볕더위가 하루 10시간씩 지속된다. 전문의들은 폭염이 인체의 심혈관 계통에 엄청난 압박을 준다며, 이런 온열 스트레스가 젊은 노동자들의 대량 사망 사태와 직접적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앞서 2014년 글로벌 국제법 로펌 ‘디엘에이(DLA) 파이퍼’는 카타르 정부에 제출한 자문 보고서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심박 정지에 따른 사망 사태에 대한 연구조사를 강력히 권고”했지만 지금껏 아무런 후속 조처가 없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의 개막식과 결승전이 열릴 8만6000석 규모의 루사일 경기장이 2020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 공사에 한창이다. 카타르 최고유산위원회 누리집 갈무리.
2022 카타르 월드컵의 개막식과 결승전이 열릴 8만6000석 규모의 루사일 경기장의 상상도. 카타르 최고유산위원회 누리집 갈무리.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의 커식 레이 교수(공공보건학)는 “일반적으로, 20~50대 성인이 잠자다 갑자기 죽지는 않는다”며 “사망 이전 상황에 대한 정보가 없는 한, 부검하지 않은 채 심부전이나 호흡 정지로 숨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카타르에선 건장한 이주노동자들의 정확한 사인 조사를 위한 부검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체부검법이 사망자의 부검 허용 범위를 의학 교육, 범죄 수사, 질병 조사 등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서다.
카타르 당국은 “부검을 위해선 유가족이 동의해야 하는데, 대다수는 종교 장례식을 위해 주검의 신속한 송환을 요구해 정확한 사인 조사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최근 18개월 새 숨진 네팔 노동자들의 유가족 중 카타르 당국으로부터 부검 조사 요청을 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부검에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는 것도 사망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부검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데 한몫을 한다. 제3세계 이주노동자는 빈곤층 출신이 많아서다.
네팔 정부 기구인 정책연구아카데미의 가네시 구룽 연구원은 “사망자의 주검을 출신국에 항공기로 송환하려면 사망증명서가 있어야 하는데, 카타르 의사들이 부검은커녕 꼼꼼한 검시도 없이 사망자 주변의 말만 듣고 사망증명서를 형식적으로 발급하는 경향이 있다”고 짚었다. 그는 네팔 정부는 자국민이 일하러 가는 외국과의 이주노동 협약에 ‘사망 때 부검 조사’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동권 이주노동자 문제를 연구하는 비영리 기구 ‘페어/스퀘어 프로젝트’의 닉 맥기헌 사무국장은 “카타르의 부검법은 저임금 이주노동자의 목숨에 대한 다른(값싼) 가치를 보여주는 증거”라며 “만일 걸프 국가나 서구(유럽)인들이 석연치 않은 환경에서 매년 수백명씩 죽어 나간다면 엄청난 소동이 벌어지고 문제 해결에 거액의 돈이 쏟아부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