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이 지난 2월4일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국가를 부르고 있다. 콜롬보/AP 연합뉴스
경제난으로 사임 압력을 받아온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이 13일 국외로 도피했다. 스리랑카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이날 아침 부인과 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스리랑카 공군기에 올라 몰디브의 수도 말레로 떠났다고 공군이 성명을 통해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로이터>는 익명의 소식통 말을 인용해 라자팍사 대통령이 말레에 있다가 다시 제3국으로 떠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로써 지난 2004년 라자팍사 대통령의 형인 마힌다 라자팍사가 총리에 오른 뒤, 20년 가까이 스리랑카 정치 권력을 주물러온 라자팍사 가문의 전횡은 막을 내리게 됐다. 대통령 권한 대행인 라닐 위크레마싱헤 총리는 13일 대변인을 통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서부 지방 통행금지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라자팍사 대통령의 몰디브행은 스리랑카 독립 후 최악의 경제난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대통령과 총리 관저를 점거한 상황에서 이뤄졌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지난 9일 시위대가 관저로 몰려오기 전 콜롬보의 반다라나이케 국제공항 인근 공군기지로 피신해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졌다. 마힌다 야파 아베이와르데나 스리랑카 국회의장은 9일 라자팍사 대통령이 13일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했는데, 사임 예정일에 라자팍사 대통령은 해외로 도피한 것이다. 시위대는 대통령 해외 도피 소식에 “도둑”이라고 외쳤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위크레마싱헤 총리는 지난 9일 새 정부가 구성되면 물러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에 따라 스리랑카 국회의원들은 관련 법률에 따라 다음주 새 대통령을 뽑기로 했으나 새 정부 구성을 둘러싸고 진통을 겪고 있다. 새 대통령은 2024년 말 끝나는 라자팍사 대통령의 잔여 임기를 채우게 된다. 스리랑카의 싱크탱크 ‘국가평화협의회’ 제한 페레라는 시위대의 대통령 공관 점거에 대해 “정부 지도부가 바뀌어야 한다는 컨센서스를 분명히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스리랑카는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과도한 외채를 끌어 쓰다 코로나19 등의 사태로 경제 위기가 촉발되면서 국가부도 사태에 빠졌다. 극심한 생필품 부족을 겪게 된 국민들이 정부의 실정에 항의하며 반정부 시위에 나서며 사회는 몇 달째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스리랑카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으나, 지원을 받기 위해선 먼저 다음달까지 외채를 줄이기 위한 자구 방안을 마련해 제출해야 한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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