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옷을 만들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우리가 입는 옷을 잘 살펴보자. 지난달 구매한 유니클로 티셔츠는 올해 초 중국에서, 지난해 말 무인양품에서 산 잠옷은 그해 3월 캄보디아에서 제조됐다. 그러나 이 간단한 정보 외에는 이 옷이 이동해온 여정을 알기 어렵다. 우리는 모델의 표정이나 매장의 분위기로 그 옷을 기억할 뿐이다.
거대 의류공장은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와 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에 모여 있다. 아디다스, 나이키, 에이치앤엠(H&M), 자라, 리바이스, 유니클로, 무인양품 등 유명 브랜드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들이 밀집해 그 나라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초국적 기업들은 이 지역의 임금이 매우 저렴한데다 규제가 거의 없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가치사슬을 구축해왔다.
‘산업화’ 흑인노예 착취 구조, ‘생산 외주화’ 동남아로
1990년대 캄보디아의 의류산업은 꽤나 악명 높았다. 아동노동은 흔한 일이었고, 공장 내 성희롱과 구직을 위한 성매매가 만연했으며, 하루 15시간에 달하는 노동조건은 끔찍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19년 발간한 캄보디아 섬유산업 관련 보고서와 지난해 공개된 세계은행 데이터를 보면, 1990년대 중반부터 25년간 캄보디아 섬유산업 규모는 200배 이상 성장했으며, 수천명에 불과했던 종사자는 약 900만명으로 늘었다. 이 나라 여성 노동인구 5명 중 1명이 옷을 만든다.
올해 4~5월 살인적인 더위가 동남아시아를 덮쳤다. 5월6일 캄보디아 프놈펜 기온은 44.2도를 기록했고, 비슷한 시기 타이 방콕은 41도였다. 이처럼 기온이 오르고 빙하마저 녹고 있다 보니 해수면 상승은 임박한 현실이 됐다.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는 2050년께 해수면이 0.6~1.1m 상승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렇게 되면 최대 105만㎢에 달하는 저지대가 물에 잠긴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이럴 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처럼 부유한 도시들은 제방을 높게 쌓아 도시를 지킬 것이고, 남반구의 민중들은 피난 행렬에 나서야 한다.
미국 노동총연맹산업별조합회의(AFL-CIO) 산하 ‘연대센터’가 발간한 보고서 ‘글로벌 의류산업이 캄보디아의 기후변화 취약성을 형성하는 법’을 보면,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67%가 작금의 기후위기를 인지하며, 이 중 74%가 우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섬유산업은 산업혁명 시기 자본주의와 식민주의가 결합하면서 발전했다. 19세기 이후 면화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때 자본가들은 엄청난 수의 흑인 노예를 활용해 산업을 확장했다. 착취는 노예제와 함께 끝나지 않았다. 의류공장 노동자들은 먼지 가득하고 습한 방직공장에서 1년 내내 하루 12시간, 주 6일 이상 일해야 했고 무한착취는 고스란히 동남아시아로 옮겨왔다. 캄보디아 노동자들에게 19세기 영국과 미국의 공장들에서 벌어진 초과착취에 대해 이야기해준다면 아마 “우리 이야기”라고 답할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의 생산양식은 사라지지 않았고 위치만 달리한 채 반복되고 있다. 기후위기라는 더욱 거대하고 파국적인 환경 아래서 말이다.
섬유 생산은 오염이 심한 산업 중 하나다. 세계은행이 2019년 9월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세계 탄소배출량의 약 10%(2018년 기준 연간 12억t)가 의류산업에서 배출되는데, 이는 모든 항공과 해상운송을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이다. 인문지리학 연구자 로리 파슨스는 선진국 독일의 의류 브랜드 5개의 제품이 60개국 5235개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며 공급망의 불투명성과 의류 브랜드들의 ‘그린워싱’으로 의류산업에서 벌어지는 영향이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유니클로와 캘빈클라인은 위구르족 강제노동 혐의를 받고 있는 중국 면화를 “결코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 브랜드 제품을 생산하는 캄보디아 공장은 대부분 중국산(면화의 86.4%)을 사용한다. 그러니 복잡하고 불투명하게 얽힌 글로벌 공급사슬망에서 ‘착한 소비’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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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탄소배출 줄였다며 소비 늘려…개도국 위기 내몰아
몇년 전부터 기후위기를 둘러싼 논쟁에서 ‘탄소 식민주의’ 담론이 대두됐다. 이는 오늘날 세계를 주도하는 선진국들이 강제하는 규칙들이 남반구 국가들의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노동자들을 매우 저렴한 인건비로 착취하고 있음을, 기후파괴의 체계적인 아웃소싱이 이뤄지고 있음을 가리킨다. 선진국들은 공급망 확대를 통한 생산 외주화로 자국 내의 1인당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있지만, 과거보다 늘어난 선진국 시민들의 소비는 개발도상국 착취를 밑거름 삼아 이뤄진다. 국제환경단체 ‘기후행동추적’은 유럽연합의 탄소 순배출량이 1990년 56억t에서 2018년 42억t으로 감소했지만, 유럽의 늘어난 소비는 탄소배출량 감축을 상쇄한다고 지적한다. 공급망으로 연결된 세계 자본주의에서 국경을 기준으로 나눈 탄소회계시스템의 허구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세계 탄소배출량의 증가세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의 역사적 주범이기도 한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들에 기후변화에 따른 비용을 구조적으로 전가해왔다. 캄보디아 노동자 1명의 연간 탄소배출량이 400㎏인 데 비해, 한국인 1명의 배출량은 38배인 15.5t(2022년)이다. 기후변화의 대가를 더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것도 캄보디아 같은 나라들이다.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에 화석연료를 팔고,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의 화석연료를 사용해 탄소를 배출한다. 심지어 선진국에만 유리한 규칙을 강요하기도 한다.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루이스 아르세 볼리비아 대통령은 ‘탄소 식민주의’를 지적했다. 그는 “국제탄소시장메커니즘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녹색자본주의’를 통해선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바, 자본주의에 맞선 대안적 모델을 강구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탄소 배출권 거래 제도를 통해 기업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일에만 치중하는 선진국들의 위선보다 훨씬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상품은 외견상 깨끗하고 탈탄소화되어 있다. 하지만 오래된 세계는 사라지지 않았다. 더욱 은폐된 모습으로 커지고 있을 뿐이다. 규제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탄소집약적 생산과 환경 파괴가 도처에서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들처럼 기후위기 최전선에 선 민중을 고통으로 밀어넣고 있다.
극소수 자본가들의 이윤만 부풀린다. 궁극적으로 이는 탄소배출에 대처하는 인류의 능력을 약화시키며,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가 ‘탄소 식민주의’를 끝내야 하는 이유다. 인간이 만든 재앙은 인간이 끝내야 한다.
동아시아 연구활동가
플랫폼C 활동가. 동아시아 이야기를 씁니다. 각 사회의 차이를 이해하고, 같은 꿈을 지향하자(異牀同夢)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상을 품은 동아시아의 꿈(理想東夢)이라는 뜻도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