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구호대상 800만명…국제사회 지원 느리기만
“쓰나미·지진 등 연이은 재해에 기부 피로증” 분석
테러 관련 불신 탓도…실상 알려져 영국선 기부 늘어
“쓰나미·지진 등 연이은 재해에 기부 피로증” 분석
테러 관련 불신 탓도…실상 알려져 영국선 기부 늘어
‘대홍수 한달’ 계속되는 재앙 지난달말 북서변경주에서 시작된 파키스탄 역사상 최악의 홍수피해가 한달째 지속되며 파키스탄인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28일 남부 신드주 남쪽인 타타에서는 두번째로 주변 둑이 터지며 주민들이 피난길에 올라 “텅 빈 도시”(현지 관리)가 되어버렸다. 외곽 도로를 막아 부실한 구호작업에 항의 시위를 벌이는 등 파키스탄인들의 분노는 폭발 직전이다. 신드주에서만 이틀 사이 100만명, 지금까지 모두 합치면 700만명이 집을 버리고 피난을 했다고 〈비비시〉(BBC)는 전했다. 유엔은 인더스강이 평소보다 40배 이상 불어있다며, 특히 어린이들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약속만으로 파키스탄인들을 도울 수 없다. 국제사회에 약속을 시급하게 현금으로 바꿀 것을 촉구한다.” 유엔식량농업기구의 알리 칸 대변인은 최근 이렇게 <로이터> 통신에 호소했다. 유엔이 초기 구호에 필요하다고 제시한 액수는 4억5900만달러. 하지만 지난달 말 홍수 발생 이후 지원액은 지난주초까지 50~60%대에 머물렀다. ‘글로벌 인도주의 지원’의 잔 켈렛 대표는 “동남아 쓰나미 땐 발생 16일 만에 전세계에서 14억달러가 모였지만, 파키스탄엔 같은 기간 2억달러에 불과했다”고 <머니아티클>에 말했다. 그 어떤 때보다 국제사회의 지원은 적고, 느리다. 인류의 눈물은 말라버린 걸까?
전문가들은 ‘기부 피로증’(donor fatigue)을 이유 중 하나로 꼽는다. 2004년 동남아 쓰나미, 2005년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지진과 2008년 미얀마 사이클론, 올 초 아이티 지진까지 국제사회의 지원이 쏟아졌던 재해가 잇따랐다. 영국 왕립국제연구소의 마리 롤 박사는 <비비시>(BBC)에 “경기후퇴기란 타이밍도 기부 피로증을 더했다”고 말했다. 이번 재해가 지진이나 쓰나미처럼 단시간에 ‘충격적인’ 형태가 아니라,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데다, 다른 재해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망자 수(1600명)가 적은 것도 재앙의 심각함을 가린다. 하지만 유엔 추정치에 따르면 이번 홍수로 집이 완전히 파괴된 사람은 460만명, 음식과 물 등 긴급지원이 필요한 사람은 800만명에 이른다. 3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피해 복구에 들어갈 예상액은 100억~150억달러다. 파키스탄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 불신을 이유로 꼽는 이들도 있다. 파키스탄 군부의 부패에 대한 고정된 인식이 자신들의 돈이 제대로 구호에 쓰일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실제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은 홍수가 막 발생했을 때 유럽 방문을 강행하고 2주가 지나서야 피해지역을 방문하는 등 악수를 거듭 뒀다. 하지만 국제위기그룹의 남아시아 담당 사미나 아메드는 “설령 선진국이더라도, 이번 같은 규모와 강도의 재난을 혼자 감당할 순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아이티의 경우는 아예 기능하는 정부조차 제대로 없었지만, 전세계가 30억달러를 지원했다.
홍수 직전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파키스탄이 테러를 수출하고 있다”고 발언한 데서 보듯, 최근 테러와 관련해 파키스탄의 나쁜 이미지도 한몫한다. 이에 대해 <비비시>는 “설령 구호를 호소하는 선의라 하더라도 홍수의 틈을 타서 탈레반 등 무장세력이 구호에 앞장서고 있으며 그대로 두면 파키스탄인들이 탈레반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언론들의 보도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고 비판했다. 최근 피해가 확산되고 있는 남부지역 등은 테러리즘과 아무 관계없는 “토마토와 양파를 재배해 수출하는 조용한 마을들”이다. 전문가들은 파키스탄 재앙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영국에선 언론 보도와 파키스탄인들의 호소가 집중되며 민간 13개 단체에 모인 기부금액이 2주 전에 비해 지난주 70%나 늘었다고 27일 밝혔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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