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전략 갈등이 격화되고 미·러가 우크라이나를 사이에 두고 정면충돌로 치닫는 가운데 중·러 정상이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에 맞춰 대면 회담을 열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미국과 유럽 등을 한편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다른 한편으로 하는 대결을 의미하는 ‘신냉전’ 흐름이 더욱 강화되는 모양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이날 오후 베이징에 도착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두 정상은 열렬하고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중-러 관계와 국제 전략 안보와 관련한 중대한 사안에 대해 깊이 있는 의견을 나눴다”고 전했다. 시 주석이 외국 정상과 대면 정상회담을 한 것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2년여 만에 처음이다.
이날 회담에서 두 정상은 양국 관계 심화와 새로운 국제체제 구축, 지속가능한 세계 발전 촉진 등을 의제로 미국과 유럽 등 서방에 맞서기 위한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냉전 종식 이후 지속된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를 깨뜨리고, 중·러가 세계 질서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다극 체제’를 구축하자는 의도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를 증명하듯 두 정상은 회담 직후 ‘새로운 시대 국제관계와 지속 가능한 세계 발전에 관한 중-러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양국은 이 성명에서 서로의 “핵심 이익, 국가 주권, 영토 보전을 지키기 위해 상호 지원하겠다”는 뜻을 다지며, 미국의 압박에 맞서 바짝 밀착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구체적으로 러시아는 중국이 집착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과 대만이 중국의 불가결한 일부라는 점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혔고, 중국은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확장에 반대한다”며 러시아의 손을 들어줬다. 시 주석은 앞선 회담에서도 “중·러는 복잡하고 변화된 국제정세에 맞서 전략적 협력을 심화하고, 국제 공평·정의를 위해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러-중 관계는 21세기 국제관계의 모델”이라며 “러-중 관계의 전략적 성격이 전례 없이 부각돼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양국 간 전면적인 전략적 협력 심화는 세계 전략안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화답했다.
향후 양국 협력에서 주목해 봐야 할 분야는 에너지 협력이다. 양국 정상은 지난해 12월14일 열린 화상 정상회담에서 몽골을 통해 중국 중부 일대에 한해 천연가스 500억㎥를 공급할 수 있는 ‘시베리아의 힘 2’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을 논의한 바 있다. 양국은 7년여 전인 2014년 5월에도 한해 380억㎥의 천연가스를 30년 동안 공급하기로 하는 4천억달러(약 473조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었다. 이후 헤이룽장성을 통해 중국 동부 일대로 천연가스를 들여오는 총연장 3천㎞에 이르는 ‘시베리아의 힘’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2019년 말 운영을 시작했다.
당시 양국이 파이프라인 건설에 전격 합의한 시점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합병한 지 불과 2개월 만이었다. 국제사회의 제재에 직면한 러시아가 중국과의 초대형 계약을 통해 ‘활로’를 찾은 셈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가 다시 제재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양국이 두번째 파이프라인 건설 사업을 추진한다면, 미국 등이 예고한 고강도 제재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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