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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메르켈의 ‘엄마 정치’ 시민들 능동성을 잠재워”

등록 2021-09-07 04:59수정 2021-09-07 08:44

[앙겔라 메르켈 독일에 무엇을 남겼나]

‘쥐트도이체 차이퉁’ 전 편집장
헤리베르트 프란틀 인터뷰

“정치 참여 대신 소비자로 전락
포스트 메르켈은 방향성 달라야”
헤리베르트 프란틀 <쥐트도이체 차이퉁> 전 편집장.
헤리베르트 프란틀 <쥐트도이체 차이퉁> 전 편집장.

“메르켈은 ‘엄마가 다 해결할게’라고 자장가를 부르면서 시민들의 정치적 능동성을 잠재웠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집권이 무려 16년이나 이어진 만큼 독일 일각에선 혹독한 비판의 목소리도 쏟아내는 중이다. 일찍이 메르켈이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방식을 두고 ‘앙겔라 마키아벨리’라는 키워드를 만들었던 독일 언론인 헤리베르트 프란틀(67·사진)은 메르켈 시대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이들 중 하나다. 독일의 대표적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에서 10년 동안 편집장을 지낸 프란틀은 6일 <한겨레>와 서면 인터뷰에서 “(메르켈 시대를 거치며) 시민들은 능동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대신 정치 소비자가 되고 말았다”며 “이런 배경에서 독일 내의 극우 세력이 힘을 얻고, 기존 정당들에 대한 불신이 강해졌다”고 진단했다.

프란틀은 메르켈 시대를 “침착한 리더십이 이끈 정치”라고 표현한다. 이 리더십 덕분에 독일은 금융위기나 코로나19 팬데믹 등 격랑을 잘 헤쳐 나올 수 있었다. 독일이 지난 7월 홍수로 큰 피해를 입었을 때 정부가 10억달러의 구호자금을 빠르게 지원하며 재건에 나선 것, 또 지난해 코로나19 1차 위기 때 초기 대응이 늦었는데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 등이 전형적인 메르켈식 안정적인 통치의 예다. 하지만 그는 “메르켈의 가장 위대한 통치 기술은 자신이 하지 않은 것도 자신의 것으로 포장하는 기술에 있다”며 “의무복무 폐지와 군 개혁, 최저임금제 등 중요한 사회개혁은 연정 파트너인 사회민주당의 압력에 떠밀린 결과”라고 비판했다.

난민수용 문제는 메르켈 시대를 평가할 때 가장 논쟁적인 문제다. 프란틀은 “시리아에서 많은 난민들이 유럽으로 밀려오리라는 것은 이전부터 예견됐다. 그러나 아무런 대비 없이 사태를 맞이하면서 착오를 거듭했다. 당시 독일인들은 난민들을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난민을 배치, 수용할 관리체계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로 인해 갑자기 난민들이 몰리며, 지난 역사에 대한 반성 때문에 유럽에서 유일하게 극우당이 없었던 독일에서 아에프데(AfD·독일을 위한 대안) 같은 극우당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정부는 어떻게 수용하고 통합할 것인가가 아니라 몇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느냐에 집중했고 (그 이상은) 다른 나라로 떠밀어 보내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메르켈 정권은 기민련(기독민주·사회연합)과 사민 양 정당이 십수년 동안 ‘대연정’이라는 이름으로 공생하면서 유지되어 왔다. 전통적으로 독일 정치는 이 두 정당이 서로 대립하면서 빚어내는 ‘생산적인 갈등의 정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연정 체제로 정치적 역동성이 사라지고 사회전환의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 드물어졌다. 프란틀이 “메르켈은 다음 정치세대를 제대로 세우지 못했고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꼬집는 이유다. 물론, 메르켈 개인이 아닌 그의 높은 지지도에 기대 체제유지에 힘썼던 정치세력 전체에 대한 비판이다.

프란틀은 그렇기 때문에 ‘포스트 메르켈’은 메르켈이 하지 못했던 일들을 더 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들의 능동성에서 출발하는, 방향이 다른 정치인이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다음 정부가 이루어야 할 과제는 에너지 전환, 노동자를 보호하는 디지털 산업으로의 전환, 빈부격차를 줄이는 세제 변경, 효과적인 통합적 이민정책, 사회주택 건설, 복지제도 해체와 민영화를 중단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앙겔라 메르켈이 잃어버렸던 하나된 유럽을 만들자는 열정이다.”

베를린/남은주 통신원, 이진 <힙 베를린, 갈등의 역설 >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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