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5일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10대를 보낸 블링컨 장관이 최근 미국과 영국의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핵잠수함 기술 제공을 둘러싸고 긴장에 빠진 미국과 프랑스의 관계 회복에 역할을 하리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프랑스가 영국과 어업 분쟁이 해결되지 않으면 영국 섬들에 대한 에너지 공급을 차단하겠다고 경고했다. 영국과 미국이 오스트레일리아에 핵잠수함 기술을 제공하기로 하면서 불거진 영-프 갈등이 더욱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프랑스의 클레망 본 유럽연합 장관이 5일 영국해협 조업권 문제에 대해 영국이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이 해협에 있는 채널제도에 대한 에너지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와 가까운 건지섬과 저지섬 등으로 이뤄진 ‘채널 제도’는 영국 왕실령으로, 전기 공급을 프랑스 쪽에 의존하고 있다.
양국의 어업권 분쟁은 지난해 1월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는 과정에서 불거졌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영국은 유럽연합 차원의 어업 정책에 따라 저지섬 인근 배타적경제수역(EEZ)이나 영해 안에서 프랑스와 벨기에 등 다른 국가 선박이 조업하는 것을 허용했고, 영국 수산업체들은 유럽시장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보장받아왔다.
하지만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영국은 조업권 연장 심사를 통해 외국 선박들의 조업권을 축소시키고 있다. 저지섬 당국은 지난주 조업권 신청 95건은 받아들였지만 75건은 거부했다. 영국은 다른 국가 어선들에 대한 조업 허가를 앞으로 6년간 25%가량 줄이기로 했다.
영국의 조업 허가 축소 움직임에 프랑스 어선들은 저지섬 해역에서 대규모 해상 항의 시위를 벌였다. 문제의 수역은 가리비와 쇠고둥을 비롯해 프랑스인들이 즐기는 조개류가 많이 잡히는 곳으로, 이곳을 둘러싼 갈등을 ‘가리비 전쟁’ 또는 ‘쇠고둥 전쟁’으로 부르기도 한다.
본 장관은 “인내심이 확실히 한계에 다다랐다”며,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과 공조해 영국을 압박하겠다고 밝혔다. 또 “영국 정부는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유럽을 욕하기까지 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영국의 채널 제도는 에너지 공급을 우리한테 의존하고 있다”고 했다. 본 장관은 에너지 공급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부연하지는 않았지만, 앞서 아니크 지라르댕 프랑스 수산장관은 어업 분쟁이 해저 케이블을 통한 저지섬에 대한 전기 공급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주에도 보복 조처를 예고했다.
브렉시트 과정에서 알력을 빚은 영-프 관계는 최근 영국과 미국이 오스트레일리아에 핵잠수함 기술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악화일로에 빠졌다. 이 발표로 오스트레일리아에 디젤 잠수함 12척을 공급하기로 한 프랑스와의 대규모 계약이 파기됐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주재 대사를 소환하는 등 격하게 반발했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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