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벨라루스-폴란드 국경 근처에서 이주민들을 위한 천막이 설치되고 있다. 그로드노(벨라루스)/타스 연합뉴스
국경 지역 이주민 사태로 유럽연합(EU)과 벨라루스의 대치가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주민으로 보이는 이들이 국경 근처에서 잇따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있다.
폴란드의 경찰은 14일(현지시각) 시리아 출신인 20살 남성의 시신이 전날 북동쪽 국경 근처 마을 근처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보도했다. 정확한 사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지난 봄부터 벨라루스에서 유럽연합 회원국들인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국경을 넘으려는 중동 출신 이민자의 사망은 최소한 이번이 다섯 번째라고 폴란드 경찰이 밝혔다. 그러나 구호단체 ‘국경그룹’(BG)은 지난 봄부터 모두 11명 넘게 숨졌다고 말했다.
중동 출신 이민자들은 폴란드 당국이 국경 통과를 거부하면서 추운 날씨에 변변한 보호시설과 음식도 없이 근처 숲에 머물고 있다. 벨라루스와 폴란드 사이의 정치적 갈등에 볼모가 되어 고통을 겪고 있는 이주민만 몇천명이 된다.
폴란드와 유럽연합은 벨라루스가 유럽연합의 제재에 보복하기 위해 이주민을 국경으로 가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유럽연합은 벨라루스의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에서 야당을 탄압하고 부정선거를 치렀다는 이유로 제재했으며, 제재는 지난 5월 루카셴코 정권이 야당 인사를 체포하기 위해 민항기를 강제착륙시킨 뒤 더 강화됐다.
폴란드 당국은 최근 며칠 전 갑자기 늘어난 이민자들이 매일 국경을 넘으려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은 이번 국경을 넘으려는 이민자의 급격한 증가와 관련해 중동 출신 이민자를 벨라루스로 실어나른 항공사를 포함한 루카셴코 정권의 기관과 개인을 추가 제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이번 사태의 배후에 벨라루스 동맹국인 러시아가 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비난했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13일 “우리는 아무 관계가 없다”며 “절대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비난”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벨라루스 지도부와 유럽연합 지도부가 직접 접촉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황은 국경 근처에 머무는 이민자 2000여명에게 더욱 안좋아 지고 있다. 폴란드와 벨라루스 국경수비대가 찍어 올린 영상을 보면, 이민자들은 부실한 텐트에 머물거나 화톳불을 피우고 담요를 뒤집어쓰고 둘러앉아 있다. 이들 중에는 어린아이들을 가슴에 안고 있는 여자들도 있다.
벨라루스 언론은 루카셴코 대통령이 군에 이들을 위한 텐트를 설치하고 음식과 다른 구호물품을 전달하도록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국제이주기구(IOM)와 유엔 난민기구(UNRA)는 12일 어린이와 여성에게 음식과 위생용품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곳의 이주민들은 대부분 유럽으로 이주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밀항·밀수업자들에게 몇천 달러를 지불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은 시리아 등 중동 지역에서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까지 항공기를 타고 온 뒤 육로로 이곳 국경에 도착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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