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외교장관 아날레나 베어보크가 15일 베를린에서 러시아 외교관 2명의 추방 명령을 발표하기 위해 단상으로 가고 있다. 베를린/AP 연합뉴스
독일과 러시아가 서로 외교관을 맞추방하며 갈등하고 있다.
러시아 외교부는 20일 성명을 내어 러시아 주재 독일 외교관 2명을 “기피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선언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보도했다. 러시아는 이 조치가 “독일 정부가 앞서 취한 비우호적인 결정에 대한 균형 잡힌 대응”이라며 독일의 러시아 외교관 추방에 대한 대응 조처임을 분명히 했다. 이어, “앞으로 우리에 대한 독일의 어떤 대결적 공격이 있다면 불가피하게 비례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일 외교부는 지난 15일 베를린 주재 러시아 외교관 2명을 추방했다. 독일 법원이 ‘2019년 체첸 난민 살인사건 배후에 러시아 정부가 있다’고 판결한 데 따른 조치였다.
러시아 국적의 바딤 크라시코프(56)는 2019년 8월 베를린의 한 공원에서 체첸계 조지아인 난민 젤림칸 캉고시빌리를 살해했다. 그는 자전거로 뒤에서 접근해 소음기 달린 권총을 두 발 쏜 뒤 그가 쓰러지자 머리에 한 발 더 쏘았다. 재판을 맡은 판사 올라프 아르놀디는 15일 판결에서 살인이 “러시아 정부의 명령에 따른 집행”이라며 러시아를 “국가 테러리즘”이라고 비판하고, 크라시코프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판결이 나자, 독일의 신임 외교부장관 아날레나 베어보크는 독일주재 러시아 대사 세르게이 네차에프를 불러 “독일 법률과 주권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러시아 외교관 2명의 추방 명령을 전달했다. 이에 대해 네차에프 대사는 법원 판결에 대해 “편향적이고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결정”이라며 “이미 어려운 독일과 러시아의 관계를 심각하게 긴장시킬 것”이라고 반박했다.
독일과 러시아는 2019년 사건 당시 이미 외교관 2명을 서로 추방한 바 있다. 앙겔라 마르켈 당시 총리는 러시아 정부가 살인사건의 배후에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오면 러시아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살인사건과의 연관성을 부인했지만,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의 테러리스트 명단에 올라 있는 캉골시빌리에 대해 “피에 굶주린 잔혹한 강도”라고 비난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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